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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따독 Nov 21. 2019

절실함...

절실함으로 일어나 오뚝이가 되게 하소서

깜빡했다.

도서관에 가면서 텀블러를 빠뜨렸다.

다행히 가방에는 ‘온리’ 커피 분말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믹스커피가 싫어졌다.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는 시기와 맞아떨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달달한 커피는 이제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작은 컵도 없네!  허허, 그런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인다며 한 모금 마실만한 주머니 컵도 치워버린다고 공고문이 붙어 있었지!’ ,’ 할 수 없다. 오늘은 달콤함에 취해보자’


주머니를 뒤진다. 동전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비상 지폐를 써야겠다. 요즘 현금을 아끼려고 지갑을 안 들고 다닌다. 카드가 있으니 만 원 한 장과 천 원 한 장 을 휴대폰 사이에 끼워두면 며칠간 그대로 휴대폰 등짝과 함께 잠자고 있을 때가 있다.


천 원 한 장을 꺼내 들고 자판기에 넣었다. 입도 대기 전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통화를 끝내고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서둘러 나갔다. 아들에게 전달받을 것을 챙기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생각나서 주머니를 뒤졌다.

‘아! 자판 기안에 동전 700원!’ 두고 왔다.

그 기계는 반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그대로 있는 기계인데! 시간이 지나면 기계가 꿀꺽 먹어버릴 것이란 생각이 미치자 기계를 만든 이와 자판기 설치한 사업자를 한순간에 나쁜 놈으로 몰았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내 불편한 심기가 어디라도 탓하고 싶었나 보다.

애꿎은 그들을 탓하네.......







며칠 뒤 도서관에서 나의 속상한 마음이 단번에 사라질 만한 모습을 보았다.


도서관 휴게실에는 늘 이어폰을 끼고 있는 노숙자가 엎드려있다. 젊어 보였다. 갑자기 대학을 그만두고 방황하던 아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추위를 피할 수 없었나 보다. 새벽같이 문 여는 도서관에서 피곤을 달래려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판기 앞으로 갔다.

거스름돈 반환 단추를 누른다.

한 모금을 마시고 창밖을 본다. 무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자판기에서 들리는 지폐가 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잔돈이 떨어지지 않는 걸 듣고 달려온 것이다. 그 뒤 간절한 마음으로 사라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이다. 나보다 똑똑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이어폰을 끼지 않고 있었다. 다행이다. 일어날 용기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위와 싸우다가 이른 아침 이곳을 찾았고 미처 녹지 않은 손가락과 목을 축이기 위해 자판기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절실함이 그를 이끈 듯했다. 어떤 사연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되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일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차곡차곡 모으는 중인 것은 아닐까?


가까운 미래에 일어나 오뚝이처럼 당당히 서서 지금을 떠올리고 웃을 날이 오길 바란다.


어쭙잖은 나의 기도를 신이 들어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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