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 어려운 당신에게
[아직 팀장 시절에 머물러 있는 최상무와의 코칭 대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세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질문에 선뜻 답하기는 쉽지 않죠. 그렇다면 이 질문은 어떨까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세요?”
이 질문은 좀더 다가가기 쉬운 질문이죠?
위 질문 모두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이에요.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가 ‘정체성’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후 학자들이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정체성을 정의해왔습니다.
정체성(Identity)
상당 기간 동안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의 자기에 대한 경험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분석용어사전]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은 다르데요.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자신’을 형성해갑니다. 그러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묻기 시작하죠. ‘타인과 구별되는 나’를 찾기 위한 ‘개인적 정체성’을 정리하는 과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능력이 있으며, 어떤 신념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로 이 삶을 대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러다 어떤 ‘역할’을 맡기 시작하면서 ‘개인적 정체성’에서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저도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힘들었던 역할 중의 하나가 ‘엄마 역할’이었죠.
‘일을 맡겨준 사람에게 기대 이상으로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는 절명을 가지고 있던 저였습니다. 그 기대가 필터없이 아이에게 그대로 투영되었습니다. 아이가 기준에 미달하는 행동이나 태도를 보일 때 저도 모르게 암묵적인 실망감을 암묵적으로 드러냈나 봅니다. 예민한 아이가 ‘마음을 다치고 있구나’를 깨닫기 시작하면, 비로소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어떤 엄마이고자 하는가?’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마지막 임종 시 이 아이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엄마’라는 역할을 잘 해냈다고 생각할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개인 삶에서 정리한 정체성’으로는 엄마 역할을 커버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기에 이런 깊은 질문들로 생각과 마음을 두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겠죠. 이전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그 틀을, 역할에 맞게 확장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역할을 해낼 것인가?’ 역할에 따른 사회적 정체성을 정리해야 합니다.
삶이 나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어떻게 존재하고자 하는가?'
분석심리학의 대가 융(Jung)은 [기억, 꿈, 사상]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 존재의 의미는 나의 삶이 나에게 질문한다는 데에 있다.
한편 이것은 반대로,
나 자신이 세상에게 나의 대답을 전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세상의 응답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는 것) 그것은 내 개인적인 것을 초월하는 사명으로 이는 오직 내가 전력을 다해 노력할 때에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출처 [기억, 꿈, 사상] 11장 사후의 삶에 대하여
좀 어려운가요? 저는 이렇게 해석했어요. 내가 세상에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명으로 왔는지 잘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죠. 개인적 정체성도 사회적 정체성(조직에서 리더 역할을 맡으면서 고민하는)도,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전력을 다해 고민해야 가능하다구요. 그 정리가 안되면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대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구요.
시선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세요.
앞의 최상무 사례를 다시 살펴볼까요? 역할에 대한 정체성을 정리하지 못했기에 아직 ‘실무자(전문가)’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요. 마감이 다가오는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자신이 유능하다고 평가받았던 영역으로 다시 찾아 들어가 실무자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짬밥이 몇 년인데 이것 하나 못하냐고 야단치며, 이렇게 일을 못하니 내가 실무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더 큰 조직을 맡아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임원인데 실무를 계속 해줌으로 당장의 필요를 채워줘서 고맙지만, 여기까지가 이 사람의 종착역이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의 과제(task)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긴 하지만, 앞 일을 같이 내다보고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는 임원 다운 임원이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석 쉐프의 모자가 높은 이유를 아세요?
주방에서는 수석 요리사일수록 모자의 높이가 높아진다죠. 모자 높이가 경력과 위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실무를 직접하기 보다는 고개를 들고 주방 전체를 바라보며 관장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높은 모자를 쓰고 요리를 하느라 고개를 떨구면, 모자가 쉽게 떨어지니까요.
리더가 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높이가 높은 모자를 쓰는 것과 같아요. 요리사의 정체성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확장해야 한다는 거예요. 직접 새로운 요리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조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역할과 자원들이 잘 분배되고 있는지, 내 리더십의 영향력이 조직의 성과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평가하고 성찰해요.
자꾸만 고개를 숙여서 숫자나 실무를 하고 싶을 때, 그때는 내 머리 위에 높이가 높은 모자가 있다는 상상을 하세요. 조직 전체에 미칠 나의 영향력과 유산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람입니다.
당신 곁에서, 현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