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인연으로 상쇄됨을 느끼며..
이번 글에 대한 전제적인 여행(라오스-치앙마이-방콕) 계획과 일정은 이전 글 참고
루앙프라방 1에 관한 글은 이전 글 참고
이번 글은 루앙프라방에 관한 두 번째 기록이다.
라오스에 온 지 6일째이다. 그동안 우기가 어떤 것인지 몸소 체험 중이다. 덕분에 많이 덥지 않았지만 옷이 마를 날이 별로 없다. 뽀송뽀송한 새 옷을 입어도 금방 축축하게 젖으니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안 했다. 수염을 깎는 것도 귀찮아 깍지 않은지 3일째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거의 매일 밤마다 클럽에서 늦은 시간까지 즐기느라 몸도 피곤하고, 몸에서 열도 살짝 있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지만 평소에 금방 회복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루앙프라방에서 유명한 탁발 수행을 보려고 알람을 맞춰 놓았다. 하지만 기절하듯 잠들어 알람을 전혀 듣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아침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탁발 의식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아직 내일이 남았으니 아직 기회는 있었다.
조식을 서둘러 마치고 씻고 나니 10시를 넘었다. 쿨룩(KLOOK) 사이트에서 예약한 꽝시 폭포 픽업 차량 예약 시간이 11시 30분이라 아직 둘러보지 못한 사원을 다녀볼까 생각했지만 그냥 짐 정리와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꽝시 폭포에서 수영하기 위해 레시가드로 갈아입고 로비에서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데, 12시가 다 되어가도 픽업 차량이 오지 않았다. 호텔 직원에게 부탁하여 담당자와 전화 통화가 되었고 알고 보니 실수로 나를 빼놓고 출발한 것이다. 일정이 꼬인 것에 대해 화가 나 투어 자체를 취소하고 근처 여행사에서 다시 예약하는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여의치 않아 일단 13시 30분에 다시 픽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처음부터 오후 일정이었다면 오전에 여유롭게 사원을 둘러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픽업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점심을 먹고 호텔 근처 사원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쿨룩(KLOOK) 후기에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실제로 내가 겪어보니 황당하고 화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정을 신속하게 바꿔 오늘의 여정을 다하는 것이었다.
▣ 왓 농씨쿤므앙
호텔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왓 농씨쿤므앙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전의 한가로운 루앙프라방의 올드타운의 모습은 어제와 다른 느낌이었다.
라오스 사원들이 대체로 작은 편이라 농씨쿤므앙 역시 금방 둘러볼 수 있었다. 3단으로 된 지붕과 계단에 양쪽에 전시된 Naga(뱀 모양의 물의 신) 조각상들이 인상적이다. 특이한 점은 사원들마다 Naga의 머리 개수가 다르다. 추측하건대, Naga는 사원 지키고 신성한 법당으로 들어가는 잡귀를 막는 역할일 것이다.
▣ 왓 쌘
왓 쌘은 18세기 초 건설된 태국 양식의 사원이라고 한다. 입구 옆에 밧 쌘쑤카람(VAT SENSOUKHARAM)이라고 적혀있어 헷갈렸다. 쌘은 10만을 뜻하는 것으로 사원 건축에 들어간 돈을 의미한다고 한다. 마음이 급한지 대충 둘러보았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찾아보니, 창문들 사이로 여신의 그림들이 있다고 한다.
▣ 왓 키리
왓 쌘을 관람하고 5분 정도 거리의 왓 키리로 향했다. 왓 키리는 18세기 푸안 왕국의 왕자와 루앙프라방 왕국의 공주가 결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사원으로 다른 사원들과 다른 독특한 느낌이었다. 사원이라기보다는 사원처럼 지어진 가정집 느낌이다. 하얀색 벽돌과 지붕의 색깔이 이질적이지만 잘 어울렸다.
여기까지 온 김에 왓 씨앙통까지 보고 싶었지만 픽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호텔로 돌아갈 때, 남칸 강(Nam khan river) kingkitsarath 도로 쪽으로 이동하였는데, 메콩강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있으니 픽업 차량이 도착했고 작은 밴에 올라타 꽝시 폭포로 출발하였다.
▣ 꽝시 폭포
차량에 한국인은 나 혼자였고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루앙프라방을 벗어나 좁은 산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꽝시 폭포 입구에 도착하였다. 입구 주변에는 음료나 기념품들을 파는 가계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레시가드와 수영복을 입고 왔기 때문에 그냥 비를 맞으며 이동했다.
산길을 따라 한 10분쯤 올라가자 꽝시 폭포가 나타났다. 그리고 어제 푸시산 정상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인도네시아 젊은 친구를 보게 되었다. 재밌는 인연이다. 반가웠다. 그 친구도 혼자이고 나도 혼자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함께 하류쪽으로 이동하였다. 이 친구를 만난 덕분에 오전에 있었던 짜증이 사라졌다.
계곡 물 색깔이 내 상상과 달라 조금 실망했지만 넓은 자연 수영장을 보는 순간 얼른 물속에 뛰어들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 짐도 보관해주고 사진을 찍어주며, 친해졌다.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었지만 그 친구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서로 저녁 약속을 잡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라인 아이디만 주고받았다.
돌아오는 차량에서 사진들을 확인하는데, 스마트폰 터치에 문제가 발생했다. 물 속에 들어갈 때, 미리 준비한 방수팩에 넣었지만 물이 스며들어간 것이다. ㅠㅠ 터치가 잘 되지 않는다. 방수팩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애플케어에 가입되어 있어 폰 수리는 걱정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찍은 사진을 날려버릴까봐 걱정되었다.
일단 숙소에 도착하여 유심을 제거하고 드라이기로 말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더 안 좋아져 이제는 아에 터치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할 때, 분실이나 고장을 대비하여 예전에 사용하던 폰을 가져온다. 일단 유심을 두번째 폰으로 옮기고 사진을 살리기 위해 호텔방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라이기로 열심히 폰을 말렸다.
두 시간 동안 열심히 폰을 말렸지만 여전히 터치가 되지 않았다. 폰 살리는 것을 포기하고 사진이라도 건질 방법을 고민하였다. 일단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어제처럼 야시장을 다니다 유토피아로 발길을 향했다.
▣ 유토피아
원래 일몰 시간에 유토피아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호텔에서 폰을 열심히 살리느라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또 계획이 틀어졌다. 기분도 틀어졌다.
20분 정도 걸어 유토피아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았지만 머리속으로 폰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멋진 바의 모습을 두 번째 폰으로 사진을 찍어 남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영 기분이 나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며, 생각해 보니, 오늘은 인도네시아 친구를 만난거 이외에 좋은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두 번째 폰이 있어 여행을 하는데 문제는 없겠지만 내가 남기고 싶은 사진들은 내가 원하는 화질이 아닐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자, 나는 남은 일정을 위해서라도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의 여행을 망치지 말자. 맥주의 마지막 잔을 비우며, 스스로 다독였다. 어제 밤처럼 다오파 클럽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오늘은 얌전히 호텔로 이동하였다.
'아놔~' 11시도 안되었는데, 호텔 문이 잠겨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울타리를 넘어 들어간다.
내일은 치앙마이로 넘어가는 날이다. 일찍 일어나 탁발 수행을 보고 오늘 오전에 가보지 못한 왓 씨앙통을 둘러보기로 마음먹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기 직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수된 폰을 터치해 보았다. 조금 터치가 된다. 오늘 밤이 지나면 이마저도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에어드롭(AirDrop) 기능을 활용하여 두 번째 폰으로 사진을 옮기기 시작했다. 터치가 잘 되지 않기에 옮기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진을 다 옮기고 나니 새벽 2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