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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Oct 31. 2017

소설 루시드(Lucid) - 첫 만남

이동영 초단편소설 (1화) - 10화 완결 예정

여자가 말했다.

"난 당신의 다음을 볼 수 있어요."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옆자리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어서 남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 예.."


보통 고속버스에선 낯선 이에게 말을 건다 해도 같은 도착지(터미널) 정도의 명분뿐이다. 헌데 이건 예의상 대꾸하기도 뭐한 맥락없는 한마디. 4차 산업혁명 대응을 논하는 시대에 남의 미래를 운운하다니, 왠지 신흥종교 전도사의 기운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해서 힐끔 자리를 옮길까 하다가 앞쪽의 모니터를 보고 만석임을 알아차린 남자는 생각했다.

'정말 도를 전하려는 사람이거나 선천적으로 낯을 가리지 않는 친화력 최고인 용자인가 보다.'


순간 남자는 창문에 비친 여자의 빼어난 미모를 감상했다. 긴 생머리가 어깨까지 닿았고 기다란 속눈썹에, 투명 렌즈를 낀 것 같은 맑은 눈망울이나 오똑한 코, 상반신의 라인까지 영락없는 미인상이었다.

'내 스타일은 아니네. 부담스럽게 예쁘잖아. 설마, 꽃뱀? 아니 돈도 없는 나한테 접근해서 뭘..’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자가 당황하는 남자를 귀엽게 여기고는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제도 알 수 있어요. 조금은요."


남자가 몸을 틀어 애써 무시하는 채 하고는 지문으로 스마트폰을 잠금 해제했다. 이 상황과 감정에 대해 SNS에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남자가 쓰는 글을 창문 쪽을 보며 읊어 대는 여자.

'창문 쪽에 스마트폰 화면이 비치나? 시력도 좋네. 이 여자 오지랖은.'

남자는 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쓰는 글보다 여자가 더 빨리 말로 소리내는 게 아닌가. 마치 생각을 꿰뚫는 것처럼.


남자는 평소 습관상 먼저 완성된 문장을 떠올리고 글을 쓴다. 토씨 하나 틀림없이 말하는 여자의 음성을 듣곤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받아적고 있는 사람마냥 기분이 야릇해졌다. 남자는 옆자리 여자를 홱 쳐다보며 떨리는 입술로 불렀다.


"저, 저기요..?"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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