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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y 12. 2020

약속 없는 날,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날

이동영 미니 에세이

코로나 19로 '약속 없는 날'이 많아졌다. 국내 확진자 수 '0명'이 공식적으로 찍히던 그날은, '이제 약속을 잡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 곧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신나는 하루였다. 평범한 일상이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마치 신이 끝없이 욕심만 부리던 인간에게 잠시 멈춤의 메시지를 내려준 것 같았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건 불과 며칠 사이였다. 꿈 깨라는 듯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약속을 잡은 이들이 많았었나 보다. 국내 한 클럽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고야 말았다.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다. 애석하지만 다시 이불 밖은 위험해졌다.


모두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요즘이다. 특히 오프라인 강의와 모임이 생업인 나 같은 프리랜서는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상치 못했기에 욜로('인생은 한 번뿐' 구호)처럼 살던 나는 이런 날들의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거다. 소속되지 않고 독립하는 힘은 어떤 분야에서 재능만 뛰어나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행운도 따라줘야 하고 전략도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그동안 내가 온라인 강의도 유연하게 해왔다면 지금보다 덜 곤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주로 오프라인 강의만 고집했던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첨삭 피드백은 자칫 상처를 줄 여지가 있기에 대면하지 않는 온라인 강의는 웬만해선 하지 않겠다는 원칙이었다. 도리어 어떻게 하면 상처를 최소화하며 온라인 상 피드백을 할 수 있을지 전략을 짰던 글쓰기 강사들은 살아남았다.(질문을 바꿔야 했다)

난 내 세계에 빠져서 하나는 알고 둘은 간과했던 셈이다. 경제적 타격이 다. 일주일에 7 이상 강의하던 시절 나를 위한 소확행과 욜로 마인드는 그저 사치일 뿐이었다.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비가 필요했던 것이다.(프리랜서•예술인 고용보험제도가 도입된다니 환영한다)


다시 약속 없는 일상을 반복고 있다. 만나더라도 서로 조심스러운 일대일 만남 정도가 한 달에 더러 있을 뿐이다. 취미로 하던 연극은 물론 생업인 그룹 강의나 모임은 일정이 보류되어 현재는 거의 올 스톱되었다. 타인 다수와 대화하던 에너지가 자연히 나 자신에게 집중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날에는 잉여 에너지를 분출할 대체 수단이 필요다. 글을 쓰든 책을 읽든 다행이(고양이)와 놀아주든, 하다못해 청소라도 해야 숨 쉴만다. 최근엔 이별까지 겹쳐 마음이 좀 어수선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가족 덕으로 좋은 환경을 고향에 마련한 덕분에 내려가기로 마침 결정했다. 몇 날 며칠 이삿짐만을 싸게 된 건 어쩜 행운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럴수록 누군가와의 약속 대신 나 자신과의 약속을 해야 일상이 보람차다는 걸 잘 안다. 우선 아무리 늦게 자도 같은 시각에 일어나기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늦잠은 아침 8시를 넘기지 않는다. 늦잠보다는 차라리 점심에 낮잠을 자는 걸로 보충하는 편이 낫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갈 곳이 없더라도 샤워부터 한다. 마치 누군가를 만나는 설렘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머리까지 단정히 한다. 그래 봤자 볼 사람은 나뿐인데 말이다.


개운하게 씻고 나와서 입을 옷을 고를 때도 속옷부터 신중히 고른다. 애인도 안 만나고 공중목욕탕에 갈 일도 없지만 내가 입고 싶은 색상과 디자인 신경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목적이 아니라 날 위한 선택 계속는 것이다. 어쩌다 사람 적은 동네 카페에 가서 원고 작업을 하게 될 때면 정장을 입고 가기도 한다. 출근룩처럼 차려입는 거다. 흰 티에 청바지를 더 자주 입긴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긴장하게 만드는 옷차림을 해야 작업이 더 수월해진다. 요즘 같은 때에 나와의 약속은 긴장의 종식을 경계하는 것, 주위를 챙기는 것, 자기 루틴을 잃지 않는 것, 나에게 잘 보이는 것이다.


보통 집에만 있는 날엔 다행이와 충분한 시간을 함께 한다. 다행이는 다행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집사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껌딱지처럼 딱 붙어 있다. 그동안 잦은 출강으로 다행이에게 소홀했던 걸 반성하는 일상이 계속된다. 맛있는 간식도 챙겨주고 더 자주 쓰다듬어 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수시로 눈을 맞춘다. 처음 다행이를 입양했을 때 마음, 그 약속을 부담 없이 지키는 일상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어쩔 수 없이 약속(출강 포함)이 없어서 다행이와 함께 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부자가 되어서) 선택적으로 다행이와 자주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 가족을 보는 일도 별 수 없는 시간이 생겨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로 우러나서 실행하는 루틴이어야 할 것이다.


남과의 약속이 없는 날에 나와의 약속을 잡는다는 건 정상적인 일상을 잃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의지이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 말랑한 마음가짐이다. 누군가에게 인증하지 않아도 좋은 삶. 인정받지 않아도 스스로 인정하는 삶을 살겠다고. 양손의 새끼손가락을 서로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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