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풋(입력)이 있어야 아웃풋(출력)이 있다는 말을 콘텐츠업을 하는 현장에서는 흔하게 쓴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이런 원인들을 살펴볼 만하다. 입력이 없거나 입력에 오류가 있거나 출력할 게 없거나 출력에 오류가 있는 경우.
작가라고 해서,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고 해서 마냥 좋은 글을 매일 꾸준히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강렬한 뮤즈를 마주했을 때든, 정확하게 문장으로 옮겨지는 때든 컨디션이 특별히 좋은 날이 작가에게도 있다.
그 말은 유난히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는 뜻이다.
8년째 글쓰기 인문 강의를 해오면서 늘 자신 있게 말해왔다. 저는 글쓰기 슬럼프 따위는 없어요- 매일 꾸준히 쓰면 그냥 써지는 거예요-라고. 그 말이 독이 되었는지 천하의 이동영 작가도 글이 안 써지는 날이,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나는 글쓰기 말고 말이나 다른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내 글쓰기가 표현도구로써 활용 비율을 덜 차지하는 면도 있었다고 나름 분석했다.
작가가 글이 안 써지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군가 질문한다면 나는 개인적인 답변을 이렇게 하겠다.
그래도쓴다(어떻게든)-라고. 단 한 문장이라도 아니 한 단어라도 건져 올린다면 쓰기 전과 쓰고 난 후는 다를 거라고 말이다. 작가의 삶은 그렇다. 작가가 되는 일보다 작가로 사는 것이 12배 이상 힘들다고 감히 말하겠다.
그러나 힘들수록 뿌듯한 날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바로 오늘이 그날인 듯하다. 굳이 역사적인 날까지 기록할 건 아니다. 주기적으로 이런 날이 찾아오니까.
한 때는 너무 많이 차올라서 이걸 그대로 다 글로 옮기는 건 '누구나 이럴 텐데 너무 쉽게 쓰는 거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근데 나 조차도 그런 날이 점점 드물어지자,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쓸 수 있을 때 써야 한다고. 떠오를 때 많이 남겨둬야 한다고. 어차피 그때 쓰는 글 조차도 버릴 글이 투성이었을 텐데.
글은 마구 떠오를 때 그 즉시 적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가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스스로가 마냥 바보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즉시 적어둔다'는 말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그 즉시 공개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다음날 아침에 보면 마침표 빼고는 다 지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런 창피함을 무릅쓰고 고치고 다듬어서 내놓은 글에 반응이 영 시원찮을 때가 많다. 그럼 그것 나름대로도 의미는 있다. 모든 도전에는 의미가 있는 법이고, 생각대로 혹은 예상외로 성과가 나면 재미도 있는 게 아닌가.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내게 늘 재미있고 의미 있는 글쓰기다. 내가 작가나 강사로서 정체성보다 이동영이라는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하다 보니 직업이 작가다, 강사다라는 건 제출 문서나 사회화된 자기소개 상의 얘기일 뿐, 실제 직업은 '이동영'으로서 살아간다. 글을 쓰는 자체는 작가 이전부터 작가로 사는 지금까지 늘 재미있고 의미 있다. 난 여전히 이동영이기 때문이다.
이동영으로서 인풋을 늘리고 오류 없이 아웃풋까지 잘 정리하며 퇴고하고 공유하는 작업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사회적인 '작가' 타이틀이나 '강사' 타이틀로 나를 약간 높여 평가해준다. 작가나 강사 타이틀, 그리고 출간한 책이나 카카오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덕을 보는 거다.
가끔 내 생각엔 시답지 않을 것 같은 주저리 조차 의미로 남을 수 있는 건 그런 사회적 평가가 주어지는 덕도 어느 정도는 작용한다. 나는 그걸 적극 활용하면 되고, 독자들은 음미하거나 소비하면 그것이 콘텐츠로서 재미와 의미를 남기는 작업이 된다. 쓸 수 있을 때, 잘 써지는 날에 1.2만 명의 구독자를 염두에 두고 써서 올려두는 건 브런치 작가로서도 행운이다.
오늘처럼 '왠지' 글이 잘 써지는 날 이런 느낌 자체를 남기는 건 이동영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며 읽는 독자에겐 재미(흥미)로 남을 것이다. 공감하는 이에게도 공감하지 못하는 이에게도 마찬가지로. 만약 이런 글에도 전혀 자극도 없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더 좋은 콘텐츠를 읽거나 보거나 들으며 간접경험을 하거나 몸을 움직여 직접경험을 하길 바란다.
나에게 자극을 주는 누구라도 그 무엇이라도 있다면 그 잠재된 무엇이 폭발하는 크리티컬 매스의 날이 온다. 그때 이동영 작가와 같이 '오늘은 왠지 글이 잘 써지는 날'이라고 기록해두고 역추적을 해보길 바란다.
내가 무엇을 해왔는지, 무엇을 보아왔는지,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만졌으며, 무엇을 만났고 무엇에 흔들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