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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n 07. 2022

'아니 근데'의 창의성에 대하여

대화의 기술은 곧 관계의 기술이자 창조의 기술이다

이미지 출처: KLAB(네이버 포스트)

많은 한국인들이 대화를 시작할 때, 위 네 가지 중 하나를 거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참고로 모자이크 처리가 된 건 '시'이다. 나는 '시'을 할 만한 부O친구가 많이 없는 관계로, '솔직히'나 '사실'과 같은 말을 주로 해왔던 것 같다. '아니 근데 진짜'는 어제도 꽤 했을 것이다.


내가 '했던 것 같다-'나 '꽤 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이 모든 게 자도 모르는 사이 튀어나오는 '무의식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중에서 '아니 근데'에 주목했다. 방어하면서 동시에 공격적인 태세를 갖추는 첫 말, '아니 근데'는 우리나라 사람들 창의성의 원천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이미지 출처: SNL(쿠팡 플레이)

1. '아니 근데'를 하기 위해서는 대화 중 무언가에 '꽂혀야' 한다.

- 여기에서 꽂힌다는 건 다시 말해, '걸리적거린다'와 동의어다. 상대의 말을 듣다 보면 뭔가 걸리는 부분이 있다. 그때 우리의 입에서는 '아니 근데'라는 말이 나올 비를 한다. 뭔가 연상이 되었을 땐 확신을 가지고 그라데이션 데시벨로 주장을 펼쳐 나가는 식이다.
 
상대의 말에 무언가 걸린다는 건 그만큼 내가 상대의 말보다 진일보하거나 확장된 개념을 순발력 있게 연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것은 창의성의 영역이다.

물론 진일보나 확장되었다는 건 순간 개인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게 '걸린다'는 느낌이 있다는 건 뭔가를 알고 있다(인지한다)는 말이고, '응?' 하는 물음-질문-의문이 생성되는 찰나가 있다는 것과 같다. 그 찰나의 연상까지 해서 아니 근데~ 하고 자기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용기도 있어야 한다. 무식해서 용감한 거일 수도 있겠지만.

꼭 연상이 되지 않더라도 걸리는 부분에 그냥 '아니 근데'를 먼저 지르고 보는 경우도 많다. 아니 근데라고 뱉고 난 후에 비로소 생각하는 거다. 이때 쓰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많이 든다. 상대보다 하수로 보이거나 멍청하게 아무말 대잔치처럼 들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불면증엔 안 좋다

2. '아니 근데'를 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반박논리가 있어야 한다.
※'아니 근데'를 반박논리에만 꼭 쓰는 건 아니다. 강조논리(상대의 말에 격한 동의나 강조)를 위해서도 쓸 때가 있다.

- 결국, 반박논리가 명확해야 한다. 아니 근데~ 나는 OO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OO라고 생각해~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상대와 갈등을 빚고 싶은 것이 아니라 틀린 걸 바로 잡거나 내 생각이 보다 낫다는 걸 말로 증명하고자 할 땐 논리적 수사가 필요한 법 아닌가. '아니 근데'는 그 반박 논리를 키우는데 탁월한 습관이다. 무작정 시비를 걸거나 비난을 하기 위한 거라면 그 인성이 심각한 문제인 거고.

이미지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페이스북

더 나은 방향으로 말의 향연을 펼치기 위한 작업이 '아니 근데'의 발상으로부터 비롯되는 셈이니 이것은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규정해볼 수 있다.


반박논리가 적절하다, 적확하다 하는 건 나중 문제이고 일단 반박논리가 있지 않으면 아예 '아니 근데'를 말할 엄두조차 못 낸다. 반박논리는 토론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대화의 흐름을 주도해 가기 위해서 혹은 대화 자체를 원활히 지속해갈 목적이기도 하다. 사실을 분명히 해서 각자 정의하는 개념을 합의한 후에 대화를 이어가야 서로 오해가 최소화되기 때문이겠다.

이미지 출처: SBS집사부일체
자신의 주장을 끝내 고집하지만 고집한다는 인상을 조금 피하기 위해서 하나의 의견과 사례에 불과하다는 포장으로 <아니> 뒤에 나오는 말들.

'제가 봤을 땐'
'제 생각에는 근데'
'저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는'
'그것도 맞는 말인데'
'어떻게 보면' 등의 말하기 스킬이 등장한다.

3. '아니 근데'의 발상은 반전을 꾀한다.


-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아니 근데' 뒤에 따라오는 말은 공허만 남는다. '얘가 날 싫어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지 모른다. '아니 근데'가 제대로만 들어간다면, 그 뒤에 따라오는 말을 들은 상대'유레카'를 외친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독서모임에서 느꼈던 지점이었다. 토론과 수다 사이 어디쯤에 있는 독서모임을 선호하는 나는 독서모임을 주최할 때도, 참가자 중 1인으로 참여할 때도 '아니 근데'를 생략한 뒷말을 많이 하고 또 많이 들었다.

독서모임

공감하지 못하는 말도 더러 있었지만 존중하고자 하는 태도로 독서모임에 임할 때면 그 대화는 전부 다 소중하게 남는다. 특히 나와 다른 관점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내게 '와 이 책에서- 이 글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는 반전을 늘 선사해주곤 했다. 나도 그 반전을 주는 사람 중에 하나로 많은 독서모임 참가자들이 기억해주었다.


'아니 근데'의 발상 덕분이었다. 이 책의 저자가 아무리 뛰어난 커리어의 사람이라도 100% 동의하기보다는 삐딱하게 보는 독서법이 훨씬 많은 걸 남긴다. 독서모임에선 독서법 자체가 '아니 근데 독서법'이고 독서모임의 대화가 '아니 근데'의 생략이 판치는 향연이었다.


'아니 근데'는 꼭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측면만 들이대는 말이 아니다. 감탄사를 하기 전이나 격한 공감을 하기 전에도 쓰인다.

이미지 출처: tvN 식스센스

나는 대화의 기술이자 관계의 기술이 여기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근데'로 공감하기도 하고, 바로잡기도 하고, 다른 관점을 서로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 공유하다 보면 인사이트가 남는다. 무조건적인 '아니'도 아니고 반대를 위한 '그런데'도 아니다. 상대와 더 밀도 높은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장치로써 '아니 근데'는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해주고 나아가 서로를 성장하도록 돕는 창의적인 도구인 셈이다.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아니근데-에 품사따윈 없다)

이 글을 읽고 나서 통화를 할 때나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상대 또는 자신이 얼마나 '아니 근데'를 많이 하는지, 그 '아니 근데' 뒤에는 무엇이 뒤 따라오고 그 속에는 어떤 서브텍스트가 담겨 있는지 한 번 의식해보면 어떨까.


_이동영(이동영글쓰기교육그룹 대표)

«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저자, 글쓰기 강사


https://linktr.ee/leedong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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