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넘게 살면서 양치할 때 빼곤 거울 보는 시간이 거의 없던 내가, 무려 전신거울 따위를 샀다는 건 나름의 큰 결심이었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냐고?
있었다. 겉치레만 신경 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마음과 정신상태를 드러내는 게(다 드러나는 게) 매무새 같은 겉모습이라는 걸 늦게야 깨달은 결과다.
패션 센스가 있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하나씩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한 개인 특유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나 바이브는 명품으로 치장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어도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까지도.
전신거울까지 구비했다는 건 실재하는 사물의 갖춤을 말하는 동시에 일종의 메타포다. 원룸의 전신거울은 내 모습뿐만 아니라 방 전체를 비춘다. 거울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방 정리 안 하냐? 하고 거울이 말하는 듯하다.
내가 주관(主觀)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객관(客觀)을 일상에서 시도하는 건 전신거울만 한 게 없다. 원룸 밖을 나서서도 계속 나는 이 전신거울을 떠올리는 거다.
근데 거울이란 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금세 먼지가 쌓이는 유리 재질이 아닌가.
나를 거울로 삼으려거든 거울 관리의 몫도 온전히 나다. 거울을 잘 닦고 깨끗하게 관리해야 나를 똑바로 왜곡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흠집이 생기거나 깨지지 않도록 잘 고정해 배치해두어야 한다. 관리의정성(근성芹誠)이 필요하니 바지런 할수록 좋다.거울이 나를 보는 만큼 나도 거울을 돌보고 세심히 바라봐야 한다.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만큼이나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내가 허락할 수 있는가, 내가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워 보이는가를 신경 쓰는 삶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가 아닌 거울아, 거울아, 나 지금 제대로 살고 있니? 하고 물었다면 왕비도 미녀로 행복한 삶을 누리며 오래오래 성장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