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형, 나 이렇게 온 가족이 방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려던 찰나, 엄마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곤 멈칫했다.
엄마의 시선이 향한 곳은 수저였다. 엄마는 웬만한 건 아들들보다 아빠에게 요청하신다. 아빠는 보통 구시렁대면서도 츤데레처럼 다 들어주시는 편이다. 평생 한 번도 형과 나에게 떠넘기거나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다.이런 풍경은 우리 가족의 문화로써 당연한 분위기로자리 잡았다.
엄마는 당신의 수저를 보시더니 아빠에게 요청하셨다.
"여보, 부엌에서 거시기 좀 가져다주세요."
참고로 엄마는 군산, 아빠는 익산이 고향(전라북도)이다. 군산은 대개 전남 사투리 30%와 충청도 사투리 50%와 표준말에 가까운 20%가 섞인 말을 쓴다.(송새벽 배우, 박명수 개그맨, 김수미 배우 등의 평소 말투)여기서 전라도 사투리 '거시기'는 영단어 [Thing]에 가깝다.
하지만 아빠는 다정한 만큼의 눈치를 갖고 계신 캐릭터가 아니다. 툴툴거린다.
"거시기라고 하면 뭔 줄 알아요오 내가아"
나는 또 풋 하고 터지고,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며 갑갑해 하신다. 예전엔 아무 소리 안 해서 결혼했는데 요즘은 너무 툴툴거리신다며 따라 웃으신다. 동시에 일어나는 두 분의 심리기제는 이러하다.
엄마는 생략한 내용까지 아빠가척척 알아들어주길 바라고, 아빠는 엄마가 제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한두 번 목도한 장면이 아니다. 형은 알면서도 읽던 책을 마저 보며 밥만 먹는다. 그럼 나는 또 내가 움직여 가져오면 될 것을 아빠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수저가 짝짝이네요."
엄마는 웃으며 아빠에게 또 말한다.
"동영이는 한 번에 알아듣구만은."
아빠도 웃음이 터졌지만 부엌을 향하면서 계속 구시렁댄다.
"아니 맨날 거시기 거시기 가져달라고 하면 내가 뭔 줄 아냐고오"
이건 단순한 소통의 문제이기 전에 오래 살아온 부부 사이에 이뤄지는 눈치의 영역이다.
사실 눈치라는 건 의미구성의 상황적 맥락, 즉 Context 콘텍스트의 파악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문해력처럼 언해력도 필요하다.
물론 엄마가 무심히 '거시기'라고 하는 것도 문제 삼을 순 있다. 그러나 그 언어습관이 같이 살아온 수 십 년간 반복될 때까지 아빠도 노력을 안 한 건 마찬가지다.
이건 끝나지 않는다. 갈등의 정도는 소소하지만, 매번 반복이 되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워낙 뒤끝 없는 두 분이라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지만. 누구 하나는 상대의 변화를 포기하고, 기꺼운 희생으로 노력해야 한다.
엄마가 더 이상 거시기라는 사투리를 쓰지 않고 언어습관을 의식적으로 바꾸거나.
아빠가 엄마의 언어습관인 거시기를 들었을 때 맥락을 파악하여 눈치껏 움직이고 정 모르겠다면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들 둘 중에 한 명이 대신 움직여서 소소한 갈등을 차단해야 한다.
근데 난 이런 '소소갈등'의 장면이 너무나 우리 가족다워서 좋다. 이젠 다 같이 큰방에 모여서 밥 먹는 일이 제사 때나 모여야 가능한 일이라는데 살짝 서글퍼진다.
하루라도 더 많이 이런 가족 간의 에피소드를 쌓아두어야겠다. 너무나 거시기해서 거시기가 거시기하게 화목한 우리 가족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