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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an 14. 2023

자존감을 높이는 언어습관(이동영)

브런치 글 100만 조회수 초과달성 기념 수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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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brunch.co.kr/@dong02/1372


나는 초등학교 시절, 이상한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어떤 잘못 했을 때, 체벌하며 내게 이렇게 하라고 시켰다.


“엉엉...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엉엉...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를 반복하면서 싹싹 빌라고 한 것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나 나올 법한 학창 시절 트라우마가 오래 이어졌다. 반 친구도 아니고 선생으로부터.

순진했던 나는 평소에는 멀쩡하게 지내다가 체벌받는 상황이 올 때마다 선생이 하라는 그대로 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했으니까. 그렇게까지 바보처럼 착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곧 상대에게 굴복하고 나를 잃을 수 있다는 위험을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것(죄송합니다-하고 비는 행동)이 중학교 때까지 이어지자 아이들의 놀림은 물론, 날 체벌했던 선생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무조건 ‘죄송하다’라고 빌라는 태도에 대한 관념적 이해가 매우 부족했던 거다.

그저 무조건 죄송해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했으니 ‘죄송’이라는 태도와 ‘눈물’을 그때그때 연기했다. 체벌이 끝나면 뚝 그쳤다. 그 당시 나를 지금 내가 본다면 아마 소름이 돋지 않을까 할 정도의 메쏘드 연기였다고 자평해 본다.


선생이 체벌을 결심했다면 잘못을 한 나에게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쳐서 새롭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이 체벌의 본질일진대, 어린 나를 무시한 실로 무식한 선생의 처사였다.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할 때마다 죄인 코스프레를 하며 진짜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다. 나에게 학교는 그런 곳이었다.


심각한 것은 이 언어습관이 나 개인만 죄인으로 만든 게 아니라, 나에게 학교라는 공간을 초중고 내내 감옥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벌써 20년은 더 된 이야기인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 선생으로부터 ‘죄송’이 아닌 ‘감사’의 태도를 배웠다면 지나온 내 삶이 좀 더 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스승의 날에 찾아가는 선생님으로 기억되었을 수도?


좋은 스승이나 상사는 나의 잘못에 대해 나무라지, 나에 대해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잘못입니다-가 아니라 어떤 잘못을 했으니 고치겠다-가 되어야 한다. 혹시라도 내 존재 자체가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언어습관으로 죄송합니다(혹은 미안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 버릇을 20대 중후반까지도 좀처럼 고치지 못했다. 예의상 죄송합니다-라는 말이라도 차라리 “양해 바랍니다. 송구합니다. 실례했습니다.”라고 대체하고, 그걸 ‘감사합니다’나 ‘고맙습니다’로 할 수 있으면 대체하는 게 좋겠다.


죄송합니다를 줄이라는 말이 곧 잘못을 인정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정말 잘못을 인정해야 할 때, 적시에 쓰자는 거다. 날 만만하게 보고 ‘죄송’이라는 태도를 악용하는 이들에게 빌미를 주지 말라는 것.


요즘은 ‘자존감’에 대한 언급이 흔해져서 이런 언어습관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행이다.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줄이기만 해도 자존감의 게이지는 차오른다.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여기에 더해 자존감 강하기로 끝판왕은 어떤 언어습관을 가졌는지 살펴보면 참고할 만하다. 정치성향을 다 떠나서 ‘김어준’이라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를 주목해 보면 좋겠다. 그는 자신을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규정하는 것조차 스스로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 직업은 김어준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언론에서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떠들어도 “그런 기사를 내는 건 다 좋은데, 사진만 좀 제대로 된 거 써줬으면 좋겠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교통방송에서 하는 청취율 1위 아침 시사 방송을 서울시 차원에서 예산을 줄여 폐지해 버리니 그가 하차하자마자 했던 일은 실로 놀라웠다. 아예 개인 유튜브 방송에 교통방송과 거의 흡사한 스튜디오를 구현하여 단 며칠 만에 100만 구독자를 초과 달성해 버린 것. 제작진과 방송시간까지 똑같이 해서 통쾌한 한방을 먹인 것이다. 그가 ‘자존감 강한 척’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 이벤트 중 하나였다.

2011년 5월 28일(토) MBC 별이 빛나는 밤에 방송 후 사진입니다.

그는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과거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민 상담을 하는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가수이자 당시 라디오 DJ 윤하 씨가 연예인으로서 고민을 털어놓자, 가만히 듣고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방송이든 누군가든 어떤 힘 있는 권력이든, 시스템이든 저는 특별히 그걸로 덕 볼 생각이 없어요. 눈치도 봐야 하고, 비위도 맞춰줘야 하고. 자기 검열을 해야 하잖아요. 거꾸로 내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거죠. 내 매력을 알아보고 좋아할 사람들은 날 좋아하는 거고. 날 싫어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싫어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보기에 김어준 씨는 마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의 인간화 버전 같다. 비교 우위에서 얻는 취약한 자신감이 아닌 자신을 객관화해서 인정할 줄 알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간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비판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지지를 받는다. 지금 가수로서 실력으로나 깊이로나 정점을 찍고 있는 윤하에게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조언을 해달라는 윤하 씨의 질문에 김어준 씨는 이렇게 답변했다.

“가능하면 있는 거 드러내세요. 자기가 부족하면 채우면 되지. 없는 거 있는 척하다 망하는 거 거든. 있는 그대로 드러내세요. 그걸 알아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당신의 매력을 퍼뜨릴 거야.”

이건 그의 자존감을 높이는 특유의 언어습관이자 오랫동안 유지해 온 마인드셋이었다. 그가 직업적 음모론자(?)든 진보 언론의 희망이든 간에, 자존감이 필요한 이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이런 말을 방송에서 왕왕해왔다. 횟수는 적지만, 강연에서도 올라 비슷한 메시지와 화두를 던진 적이 있다.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을 예를 들며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한 구절에 자기 생각을 덧붙인다.

‘사람은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엄마, 선생님, 친인척, 친구, 상사 등등 타자의 욕망에 인정받기 위하여 산다.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이지만 문제는 어느 순간 내 욕망인지 다른 사람의 욕망인지 구분을 못 하는 데서 발생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엄마가 원해서 하는 건지, 또는 주변이 내게 하는 기대에 충족하기 위해 하는 건지 헷갈린 채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어 버린다. 성인이 되어 내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제자리에 멈춰 버린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언급했고, 알랭 드 보통도 말한 불안의 원천이다. 불안하던 30대 초반 나에게 퍽 공감되는 메시지였다. 요즘 회귀물(지금 알고 있는 걸 그대로 알고서 다시 태어나는 판타지 장르)의 드라마가 특히나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런 ‘현실 자각 타임’에 빠진 2030들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스스로 언제 행복한지도 모른 채 사회적 알람에만 맞춰 살아온 소위 ‘어른이’들. 자존(自尊)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주변의 욕망만을 신경 쓰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욕망의 주체가 자신이 되었을 때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김어준 씨의 말은 인상 깊었다.

언제 내가 행복한지를 말하는 습관이 자존감을 높인다.

나는 다행히도 “저는 글 쓰고 강의할 때 가장 행복해요.”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며 산다. 글쓰기 시간에도 일부러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때’를 주제로 써보라고 권장하기도 한다.


자존감이라는 건 내 결핍을 내가 잘난 만큼이나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자아의 가치를 존중하는 감정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걸 그냥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언어습관은 글과 말에서 드러난다.


당신은 혹시 어떤 말을 자주 하고 있는가? 당신은 행복할 때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단순히 자존감이 바닥이니 듣고 싶은 말로 위로해달라고 하기보다 스스로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찾고 작은 성취라도 반복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걸 글과 말로 되뇌고 있을 것이다. 자존감은 그렇게 높이는 거다.


글: 이동영 작가

Lhh2025@naver.com(특강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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