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질문은 계속해나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끝이 어떻게 날지 누구도 모르는데, 처음부터 상정해서 나중에 초심 운운하는 거 나는 별로다. 처음엔 내가 원해서 도전해 보고 아니면 돌아선다는 각오를 늘 하고 있다. 처음부터 정리된 단 한 문장의 '왜'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하되 은밀하고 복합적인 동기가 '내가 원함'이다.
한 번 사는 인생 꼭 하나에 목 매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 과정일 테고. 지금 시대가 신분계급사회도 아니니까. 선배나 교수가 사석에서 대학원 (이 전공)에 왜 왔느냐는 질문은 그래서 내게 퍽 당황스러웠다.
근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했다. 처음엔 나를 위해서 시작했던 사유였지만 누가 물었을 때 얼버무리듯 '찾아가는 중'이라고 둘러대는 내가 별로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론이 나왔다. 고대 교육대학원 평생교육전공 석사과정에 진학한 이유는 '내가 원해서'였다.
원하는 바를 따른 것이다. 원하는 바라는 건 오래도록 바라던 내 내적 욕망에 기인한다. 내가 그 복합적이고 은밀한 욕망까지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내 욕망이니까.
그래서 앞으로 선배나 교수가 내게 왜 진학했냐고 물으면 "내가 원하는 것이어서'라고 답하기로 했다. 왜 원했냐고 꼬리를 물으면 그건 내 은밀한 내적욕망에 기인하니 그걸 입밖에 내놓고 싶진 않다고 말하겠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고, 그것이 개인의 내적 욕망에 기인할 때 굳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교수가 되고 싶다, 학력을 높이고 싶다, 이런 건 모두 그 욕망에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이 전공을 통해 무엇을 해보겠다 하는 것도 지금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논문이 눈에 익어서 이것저것 찾아 공부하는 게 능숙해질 때 즈음 그 자체가 좋아서 한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내가 글쓰기를 하면서 방송을 하고 강의를 하고 꾸준히 책을 출간할지 몰랐던 것처럼. 그 모를 일에 대하여 말하기보단 원하는 바를 따라서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다. 그렇게 원하는 걸 선택하는 인생이 용기 있는 삶이고 주체적인 삶이다.
음. 근데 선배나 교수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게 당연한 건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면접도 아닌데... 썩 좋은 질문 같지는 않다. 나는 그런 질문하는 선배나 교수가 되진 말아야지. 면접이 아니라면.
'이런 글.. 아니 이딴 글도 에세이 책으로 낼 수 있다고? 이딴 게 베스트셀러?? 내 이야기 쓰면 장편 대하소설감이야.. 나도 에세이 책이나 써봐야겠네.'.. 하는 사람 중에 막상 잘 쓰는 사람이, 결국 끝까지 써서 잘 팔리는 책을 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글쓰기를 넘어 책을 쓰고 서점(시장)에 내놓는 책 출간을 했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만만해 보이는 허접한 책을 일반서점에 내놓은 것도, 그걸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도, 안타깝지만 아무나 못하는 '능력'의 범주에 있다. 그 과정이 용기이고 기획력이고 추진력인데 결과까지 끝내 만든 거니까. 게다가 작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려면 피드백을 수용하고 감당하며 버티기까지 해야 한다.
남의 성과는 늘 만만해 보이는 법이다. 그게 동기부여가 돼 주기도 하는 인간사회 현실이지만, 착각의 껍데기가 벗겨지면 진화를 해야지. 벌거벗고 정체해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 쪽팔리게 평생 애벌레로 살 텐가. 다 허물일 텐데.
이미지 출처: 유튜브 '고몽' - 드라마 일타스캔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돈이 최우선인 시대와 퍼스널브랜딩 기조가 맞물리면 이렇게 쓰인다- 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요즘 드라마 장면과 대사.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판타지.
상위 0.1% 워런버핏과 저녁 식사를 몇 억 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그보다 나도 1조 원까진 아니지만 저렇게 시간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전성기가 되려면 아직도 6~7년 정도는 남은 거 같다.그 기간을 조금 더 당겨야지. 행운과 노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