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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아펜 Apr 15. 2024

주말부부는 처음이라..

ep2: 아내의 출장

작년 여름에는 아내가 지방 출장이어서 두 달 정도 주중에는 내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던 시기가 있었다. 주말부부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에서나 존재하는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나에게 닥쳐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려가는 짐을 싸며 아내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을 거라고 글썽글썽했지만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독박육아 아니 독점육아

독박육아라는 말은 부정적이니 독점육아라는 말을 쓰자고 어떤 세상 긍정적인 분들이 그러던데 나도 이때 독점육아라는 걸 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시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시련이었다.


-아빠, 엄마 언제 와?


아이들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물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몇 밤 더 자야 온다고 대답하면 바로 드러누워 당장 엄마를 자기들 앞에 데려오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깐 내가 대답하기도 전부터 드러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대책 없이 시끄러웠고 아이들은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펑펑 울었다.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

특히 잠잘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엄마 생각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어 베개를 끌어안고 킁킁대며 엄마 냄새가 난다며 훌쩍였다. (그 와중에 아빠 배게는 냄새난다며 저 멀리 던져버리고) 아이들은 저 멀리 배를 타고 기약 없이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선원의 아내처럼 애달프게 울다 지쳐 잠들고는 했다. 나 역시 애들을 힘들게 재우고 나면 천장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아내를 그리워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아무리 울어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래 이럴 거면 한번 사는 인생 재밌게라도 살자라고 다짐한 듯 자기 멋대로 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가질 수 없다면 모든 걸 파괴하겠어.

총사령관의 부재 속에 아이들은 수시로 쿠데타를 일삼았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티비를 틀어달라고 시위를 했고 들어주지 않으면 숙제도 안 하고 밥을 먹지 않을 거라고 협박을 했다. 엄마가 있을 때 잘만 지키던 질서와 규율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했다. 나도 이 상황을 잘 해결하기 위해 두 망아지 같은 녀석들을 달래 보기도 하고 매서운 훈육도 해봤지만 도저히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때릴 거야?

나는 너무 힘이 들고 지칠 때면 마지막 방법으로 아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이들은 아내의 얼굴과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아내는 가끔 자신이 묶고 있는 호텔방을 빙 둘러 보여주곤 했는데 그 사람 없는 을씨년스러운 공간이 어찌나 부럽던지. 내가 그곳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하루하루 아내가 돌아오는 금요일만을 기다리며 버텨 나갔다.


월화수목금..

그래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금요일은 늘 오곤 했다. 목요일까지 힘들게 버티던 나는 금요일 아침만 되면 힘이 솟고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날만큼은 아침부터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우리 귀염둥이 그래도 어린이집은 가야지?"하고 환한 웃음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빠른 육아 바통터치를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역으로 부리나케 아내를 맞이하러 나갔다.

자기야 이거 받아

서울역에서 아이들과 인생컷도 찍고 애들과 놀고 있으면 저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 첫째야 둘째야~


     애들아 엄마 왔다.


이 세상에 며칠 만에 보는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보다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있을까? 아이들은 엄마의 부름에 꺄야야아 소리를 지르면서 엄마한테 달려갔고 아내는 두 팔 벌려 아이들을 껴안고 볼을 비볐다. 실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이지 아내가 오는 매주 금요일 저녁은 매번 축제였다. 그날은 보통 외식을 했는데 식당에서 아이들은 또 어찌나 엄마 말을 잘 들으며 밥을 먹는지. 하하 호호 여자 셋이 서로 먹여주고 웃고 아주 깨가 쏟아졌다.


엄마와 함께 하는 아이들의 식사 모습

신기하게도 그렇게 아빠 속을 썩이던 아이들은 180도 바뀌어서 밥도 잘 먹고 책도 잘 읽고 숙제도 슥슥 해 나갔다. 대체 아이들은 왜 이렇게 엄마 앞에선 달라지는 것인가. 주중에 아이들 말 너무 안 듣는다고 아내한테 전화로 하소연한 내가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키워 보면 아이들의 엄마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정말 상상이상이다. 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어 온갖 아양을 떨고 그 품에 안겨서 아기가 되어 엄마 엄마 종알거리는 모습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나도 분위기를 타서 좀 안아보거나 뽀뽀 한번 하려고 하면 엄청난 힘으로 힘껏 나를 밀어내는데 그때마다 어찌나 서운한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아이들의 단순하게 자신들을 가장 사랑해 주고 관심을 쏟아 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거다. 아이들은 그저 철저한 기브앤테이크로 사랑을 받고 표현할 뿐이다. 엄마는 예쁜 공주 아빠는 못생긴 똥꼬라며 키득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올림픽에 육아 종목이 생긴다면 참가자 전원은 전 세계 엄마로 꾸려질 것이다. 아빠들은 올림픽참가 예선조차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머릿속엔 정말 아이들밖에 없는 것 같다. 다 똑같아 보이는 아이들 수영복을 보면서 30분째 고민하고 있는 아내를 보면 그 정성과 관심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책을 한번 읽어줘도 어떻게 그렇게 재밌게 읽어주는지. 옷 한 번, 밥 한 번을 대충 챙겨주는 적이 없다. 아이들은 이런 아내의 절대적인 사랑과 정성을 먹고 자란다.


이렇게 쌓인 사랑의 포인트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서 내가 이제는 군것질 및 다이소 쇼핑 따위로는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지금 아내는 엄마인 동시에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회사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선생님들에게 연락해서 아이들 학원스케줄을 조절 관리하면서 우리 가족 주말 일정을 고민하고 계획한다. 또 가끔 쉬는 날에는 동네 엄마들과의 모임에도 종종 나가 친목을 다지고 최신 동네정보를 얻어 온다. 휴직 전 나는 회사일 하나에도 허덕이고 힘들어했는데 이 모든 것들을 해내는 아내가 참 대단해 보인다.


왜 여자들은 멀티태스킹에 강한 것인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길러보면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듯 육아휴직을 하면 엄마들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정말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마지 심슨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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