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아펜 Apr 08. 2024

엄마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ep1:  아빠육아의 애로사항

- 요즘 많이 힘드시죠?


둘째 어린이집 하원하는 길에 오랜만에 만난 똘똘이네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좀 눈에 띄는 내 아랫입술의 상처를 봤나 보다.


 창피하게도 상처는 지난 캠핑에서 배가 너무 고파서  오리고기를 허겁지겁 집어 먹다가 기름에 덴 자국이었다. 똘똘이 엄마는 내가 애들 보느라 힘들어서 부르튼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아 이거 입술.. 뜨거운 거 먹다가 데인 거예요

난 그냥 멋쩍게 웃고 넘겼다.


먹다가... 그냥 먹다가 그런 거예요..


그날따라 둘째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똘똘이 엄마와 각자의 아이를 기다리며 서있는데 똘똘이 엄마가 또 어색함을 깨려는 시도를 했다.


-와 근데 살이 엄청 빠지셨어요. 아이 돌보시느라 빠지신 거예요?


그렇다. 이건 일종의 취조였다. 똘똘이 엄마는 내가 아이들 돌보기 힘들어 죽겠다고 할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실 내가 살이 빠진 건 한동안 달리기를 열심히 해서였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빵집에서 악착같이 통신사 할인을 받아 샐러드를 사 먹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새벽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달리기를 하러 나간 나의 노력이 보일리가 없었다. 하지만 뭘 그걸 또 일일이 똘똘이 엄마에게 설명하고 있겠는가.


마음만큼은 덱스처럼 뛰고 싶었지만..


-아 네 육아가 쉽지 않네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똘똘이 엄마는 육아휴직은 언제 까지냐. 아빠가 첫째 엄마 외조를 너무 잘하신다. 사실 저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등등 TMI를 끝없이 이어나갔다.


사실 아이들 보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사실 육아는 입술이 터질 만큼은 아니고 살이 7킬로나 빠질 만큼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엄마들은 이 동네 흔하지 않은 아빠 육아휴직자인 나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 첫째 엄마는 언제쯤 들어오세요?

- 그럼 첫째 아빠가 애들 밥을 다 해먹이세요?

- 아이들도 다 씻기세요?


아내가 늦을 때가 많아 밥 먹이고 씻기는 걸 내가 한다 하면 그 순간 엄마들은 깜짝 놀란다. 언제부터 부모가 아이들 밥해먹이고 씻기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었던가.  


그 순간 엄마들의 표정은 대략 이러하다.


하지만 난 이 모든 것들이 엄마들의 배려인 것알고 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떠는데 동네 아저씨 혼자 놀이터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앉아 있으니 건네는 따뜻한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엄마들과의 어색한 질의응답시간보다 나를 정말로 곤란하게 하는 건 우리 첫째의 요구였다.  


-아빠, 나도 콩순이 언니네 집에 놀러 가고 싶어. 오늘 가면 안 돼?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 한 명이 콩순이네 놀러 간다는 걸 들은 것이다. (콩순이네는 아내가 육아휴직일 땐 아이들이 몇 번 놀러 간 우리 아래아래 집이다.)  하지만 아빠와 있을 땐 그 집에 놀러 갈 수가 없었다. 친구네 집에 아빠랑 같이 가는 건 육아 불문율을 어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만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첫째에게 이 미묘한 어른들 세계의 금기를 설명하는 건 최근 숫자를 익히고 있는 둘째에게 일곱 다음이 여덟이라고 알려주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왜 계속 일곱 다음에 아홉이라고 하는 건지...) 나는 그저 다음에 엄마 있을 때 같이 가라고 아이들에게 둘러대야 했다.


육아에 있어서 더 맛있는 요리, 더 깔끔한 청소, 양갈래 머리 묶은 후 똥처럼 만들기, 유치원에서 속상한 일 공감해 주기 등 아내의 공백이 느껴지는 부분은 세려면 끝도 없이 많지만 다른 부분들은 따라 할 수나 있는 것들인데 이렇게 다른 엄마들과 어울리는 부분은 아빠가 절대 채울 수가 없다. 그래서 조금 미안하다.

그럼 대체 아빠는 무엇을 엄마보다 더 잘할 수 있는가.


그래도 나는 놀이터에서 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놀이터에 있는 모든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과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한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축구를 같이 하다가 은근슬쩍 우리 아이들에게만 패스하기도 하고 저 멀리 요구르트 아주머니라도 보이면 재빨리 뛰어가서 요구르트를 사서 동네 아이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여름에 슈퍼에서 다른 아이들 아이스크림까지 사 오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전혀 즐겁지 않은 동네 아이들과의 축구..


하루는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나뭇가지에 걸려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아이들과 엄마들 모두 어떡하지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 중 엄마 한 명은 돌을 던져서 맞춰서 떨어 뜨리자고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어디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나는 그 순간이야 말로 우리 첫째 둘째에게 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옆에 있는 아이들 축구공을 잠깐 빌려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공을 땅에 한번 튕기고 부드럽게 공을 던졌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Y대 농구장을 주름잡던 그 시절의 나를..

- 와아아아아


일순간 터져 나오는 박수와 환호. 첫째와 둘째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렇다. 아빠들은 육아계의 비자발적 육체노동자다. 놀이터에서 엄마들이 여유롭게 다과시간을 갖으며 이야기할 때 아빠들은 한 발이라도 더 움직여야 한다.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우리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이건 아이들이 다칠까  항상 조마조마해하는 나의 유난스러운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빠들은 놀이터에서 발이 안 보이게 뛰고 있을 것이다. 아빠 아를 하고 있는 분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꽤 멋진 양육자일지도 모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