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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아펜 May 27. 2024

럭비공 같은 아이  

ep 5:  둘째 이야기

서쪽 하늘로 해가 뉘엿 지고 있을 때 나는 둘째를 등에 업고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창을 뚫고 집으로 들어온 햇빛에 눈을 찡그리다 뜨다를 반복하다 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철퍼덕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최근 20킬로를 돌파한 5살 둘째 때문에 40대의 가냘픈 허리에 과도한 대미지가 축적된 거 같았다.


-아빠. 일어나야지~


둘째는 바로 짜증을 내며 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했다. (아빠 괜찮아?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지)


-이히이잉


둘째의 채근에 나는 다시 힘을 내어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말의 소리를 내며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으며 걸어갔다.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소로 변한 게으름뱅이처럼 나는 괴로워 했다.


겨우 거실 소파까지 겨우 다다른 나는 둘째를 허리로 있는 힘껏 튕겨 내었는데 소파로 슝 날아간 둘째는 오뚝이처럼 서더니  "재밌다. 재밌다." 연신 소리 지르며 언니도 타보라며 권유했다.


멀리서 혼자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던 첫째가 그 말을 듣고 재밌어 보였는지 자기도 태워달라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


그 순간 언니보고 타보라 하던 둘째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자기가 먼저 타겠다며 우기며 언니를 밀치고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또 화가 머리끝까지 나고 말았다.


너네 자꾸 싸우고 그럴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애 둘 아빠가 되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나와 아내는 아이 둘은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땐 첫째가 주는 커다란 행복에 젖어 애가 둘이 되면 일어날 일들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아이 하나와 둘은 정말 달랐다. 그 혼란스러움이 축구 경기에 공을 하나 더 넣어서 축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이제 둘째가 제법 많이 커서 고집도 생기고 욕심도 많아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떠나가라 울고 불고 한다. 정말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또 너무 조용해도 문제다. 정말 아무 소리 없이 있으면 둘이 작당을 해서 무언가 크게 사고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둘이서 벽지를 뜯고 있다던지 한 명을 전동 책상에 태운 채로 끝까지 올린다던지. 이런 식으로 아빠를  화나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둘도 이런데 셋은 어떻게 키우는 것인지...


요즘  아이 셋 부모를 보면 존경심이 절로 든다. 저출산 시대에 그들은 진정한 영웅들이다. 부모들의 인내심. 헌신. 그들은 지금 보다 더 존중받아야 한다.  난 저번 김포공항에서 애 넷을 데리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부모를 보고 말았다. 그때 나는 마음깊이 존경심을 담아 경례를 할 뻔했다. 적어도 그 부모는 검색대 줄도 서지 않고 비행기도 제일 먼저 탈 수 있게 해야 했다.


show them your respect

어리석게도 나 역시 아이 셋을 꿈꾸던 시기가 있었다. 둘째를 낳기 전엔 육아의 무서움을 모르고 둘이나 셋이나 아이들은 많으면 좋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사실 딸 둘이니 아들 한명정도 더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둘째가 크면서 내가 더 이상 깊은 육아의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막았다. 둘째 보는 건 정말 너무 힘들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요즘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하는 것도 둘째다.


볼록한 배. 일자로 자른 앞머리. 언니보다 조금씩 짧은 팔다리. 그렇지만 언니보다 더  큰 얼굴.


피지컬부터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둘째. 막무가내지만 언니를 가장 사랑해서 늘 언니만 쫓아다니는 우리 둘째.


정말 가끔이지만.. 둘이서 소장난하면서 노는 첫째 둘를 보면 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진다. 싸우지 않고 노는 아이들은 정말 천사 같다.


연애할 때 아내는 본인의 매력이 럭비공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얘길 듣고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둘째를 낳고 깨달았다. 정말 럭비공 같은 매력은 제로 존재했다. 좌충우돌. 사고뭉치 매력. 자칭 럭비공 같은 여자가 럭비공 같은 아이를 낳은 것이다.


아내는 항상 자기가 가장 잘한 일은 우리 첫째 둘째를 낳은 라고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우리 아이들이 서로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항상 이 험한 세상의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서로 의지하고 잘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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