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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아펜 Apr 22. 2024

특별한 날의 호캉스

ep3: 아이들을 위한 선물

-아.. 난 이 냄새가 너무 좋아.


아내가 호텔 로비에서 말했다. 아내는 트루먼쇼 짐캐리의 아내처럼 연극톤으로 저렇게 독백을 할 때가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나는 바퀴가 고장 났는지 잘 끌리지 않는 캐리어에 투덜대며 아내를 따라가다가 '엥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지?'하고 콧구멍을 벌렁댔지만 별 다른 냄새를 맡지 못했다. 


-이거 자라나 유니클로에서 나는 냄새 아냐? 


라고 하니 아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침 로비 구석에 한 자리가 보여 후다닥 달려가서 자리를 맡았다. 운 좋게 앉을 곳을 찾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아내를 불러 옆에 앉으라고 하니 아내는 드디어 자기가 와야 할 곳에 왔다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옆에 앉으며 체크인 전 휴식을 취했다. 


아내는 호캉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매번 아이들의 생일 주간엔 호텔을 예약한다. 이번엔 둘째의 생일 기념으로 온 것이었다. 


아이들의 생일엔 아내에게 꽃을 주세요.

어느 꽃집 문구에서 본 문구처럼 어쩜 아내는 어쩌면 아이들 생일에 맞춰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것 아닐까. 그럼에도 나이키 카본 러닝화 2족을 살 수 있는 금액을 주고 호텔에서 1박을 한다는 것은 내 기준 이해되지 않는 일이긴 했다. 뭐 어차피 아내가 정하고 나는 따라갈 뿐이다. 


-아빠 우리 호텔에 온 거야? 


둘째는 유모차에서 눈을 비비며 부스스 말했다. 다행히 아이들도 호텔을 좋아한다. 호텔에선 수영도 할 수 있고 아이패드로 게임도 할 수 있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니 사실 아이들에겐 천국이다. 아이들에게 주말에 호텔에 간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들떠서 몇 밤 자면 가? 이렇게 묻고 각자의 유치원에 자기 곧 호텔에 간다고 자랑도 실컷 한다. 아이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또 못하게 하는 것도 웃긴 일 같아서 굳이 말리진 않았다. 


물론 나도 호텔을 좋아한다. 오늘 하루만큼은 층간소음에 해방되어 아이들이 아무리 떠들고 뛰어다녀도 야단치지 않는 아빠일 수 있다. 난 특히 호텔 로비의 높은 층고를 좋아한다. 뻥 뚫려있는 메인 로비를 보면 커다란 해방감을 느낀다. 로비에서 나는 지난 베트남 여행 때 둘째가 놓쳐버려 호텔 천정으로 날아간 랏소가 떠올렸다. 그 호텔의 로비는 정말 사다리 같은 것으로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잘 가 랏소..


호텔에 혼자 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어컨을 풀가동하고 혼자 침대에 누워 프로야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오징어를 씹으면서 이기나 지나 감독 욕을 하면서 야구에 몰입하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오빠 뭐 해. 빨리 애들 수영복 입혀. 


아내의 채근에 정신을 차리고 바로 수영장을 갈 채비를 했다. 


호텔 수영장은 이 이벤트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로서 수영장으로 향하는 귀여운 수영복에 모자를 뒤집어쓴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큰 행복이다. 


수영장 안엔 남녀노소 사람이 가득했다. 나와 같은 아저씨들은 너도나도 아이들을 둘러업고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고 있었고 나보다 젊은 남자들은 젊은 여자들과 꼭 붙어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햇살 좋은 날 햇빛아래 물놀이는 너무나 재미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예쁘게 사진을 찍으며 호캉스를 만끽하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핸드폰을 들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인스타에 올릴만한 사진들을 몇 장 건지고 나서야 나도 아이들과 물놀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호텔 안 사람들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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