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구들 3호] 으네제인장의 추천도서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매월 15일에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아마도 첫 시작은 그때, 제주에서 오색딱따구리를 만났을 때였을 거다. 그날은, 딱따구리가 만화나 외국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새라고 생각했던 지난 날의 편견이 깨진, 나름 기념적인 날이었다.
제주도의 한 야외 식물원을 구경하던 중 ‘딱딱’하고 나무를 찧는 소리가 들려와 막연하게 공사 소음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게 딱따구리 소리라는 남편의 말에 주위를 살폈더니 정말 나무 위에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무를 쪼아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있는 비둘기, 참새, 까치, 까마귀, 갈매기를 제외한 생경한 종의 새를 자연에서 접해본, 극히 드문 경험을 한 날이었다.
제주도라서 였을까, 식물원이라 그런 거였을까. 지금껏 만나본 새들 중 가장 희귀하다고 여긴 매, 그리고 산비둘기에 비하면 딱따구리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이돌을 만난 것 마냥 엄청난 이벤트와 같은 일이었다. 여기서 든 의문, 과연 이 만남은 길을 걷다 아이돌을 만난 급의 우연인 걸까, 아니면 공연장에 갔다가 무대 위의 아이돌을 본 정도의 필연인 걸까.
숙소로 돌아와 급하게 검색해본 결과 식물원에서 본 딱따구리가 제주큰오색딱따구리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제주큰오색딱따구리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우리나라에도 토종 딱따구리가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했었다. 알고 보니 제주큰오색딱따구리 외에도 오색딱따구리는 딱따구리 중 가장 흔한 종으로 식물원이 아니라 공원이나 시골마을에서도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텃새 중 하나였다.
이후 여행에서 돌아와, 사는 곳 근처에서도 딱따구리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산책길에 자주 나서곤 했는데 딱따구리는 아니었지만 감사하게도 지금껏 못 보고 지나친 다른 여러 종류의 새를 만나게 되었다. 흑백의 새, 얼굴에 빨간 점이 찍힌 새, 연두빛 배를 내민 새, 붉은빛의 동글동글한 모습을 한 새, 파랗고 검고 또 하얀 깃털을 가진 새 등 지금껏 수없이 지났던 길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새들을 사계절에 걸쳐 만나볼 수 있었다. 여태껏 내 주위에는 새가 없던 게 아니라 내가 새가 있을 만한 곳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경험이었다.
새들을 만나면서 종종 그들의 이름이나 그들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사실이 궁금해질 때면 기억을 토대로 검색을 하게 되는데 의외로 새의 이름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방대하다고 여겨질 만큼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인터넷세상에서 새 이름 하나 찾기가 이리도 어렵다는 사실이 한때는 믿기 힘들었지만 그러고보면 들풀의 이름도 인터넷 검색으로는 알아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들풀의 이름을 알아낼 때와 마찬가지로 책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많은 종의 정보가 들어있진 않아도 조금만 주위를 살피면 만날 수 있을 법한 새들의 정보를 담고 있으며, 색을 구별할 수 있는 그림과 이름, 그리고 사는 곳과 짧은 설명이 있는 책.
여러 책들 중 결국 가장 애용하는 건 두 권의 책으로, 두 권 다 보리 출판사에서 만든 어린이용 책이다. 동물, 바다 물고기, 나무 등의 도감을 어린이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시리즈 중 하나인 <새 도감>이 그 첫 번째 책이고, 두 번째 책은 화가 이우민 님이 글과 그림을 맡은 <새들의 밥상>이다.
두 권 다 그림이 크고 상세하게 그려져있어 새를 자세히 관찰하여 특징만 잘 기억해 둔다면 집에 와서 새의 이름을 알아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이라 새에게 관심이 많은 어린이들에게도 추천을 하지만 사실 어른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어려운 용어와 함께 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진 않으나 상식 선에서의 정보는 얻고 싶은, 산책을 하다 만나는 새들의 이름이 궁금한 이들에게 유용한 책이기 때문이다.
<새 도감>은 계절에 따른 분류, 그리고 서식하는 환경에 따른 분류를 해두어 새를 발견한 장소를 부수적인 정보로 사용할 수 있다면, <새들의 밥상>은 뒷산 새를 관찰한 것이기 때문에 새의 종은 한정적이지만 새의 먹이로부터 새의 이름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장점이 있다. 특히 꽃이나 열매를 먹는 새의 모습을 관찰한 후라면 <새들의 밥상>을 먼저 펼쳐보는 편이 좋다.
책이라서 새소리를 가지고 새의 이름을 알아보는 일은 할 수 없지만 이 두 권만 가지고 있어도 깃털의 색깔, 몸의 크기, 부리 길이, 그리고 관찰된 장소나 먹이, 계절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새의 이름과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책들을 꼭 소개하고 싶다.
외래종 만큼 크기가 크고 색이 화려하진 않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살펴보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예쁜 빛깔의 앙증맞은 새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 같이 많은 새들의 짝짓기 철에는 더 만나기가 쉬우니 길을 걷다 새소리가 들리거나 ‘딱딱’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주위를 한 번 살펴보길 바란다. 새들은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말이다.
[노래하는 새들] 전시
장소 : MOKA garden (남양주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일시 : 2021.5.4~2021/10/24
글쓴이. 으네제인장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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