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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색 돌멩이 Oct 03. 2024

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04. 빌런과 빌런은 공존 할 수 없다.

*빌런이란? 영화, 드라마, 무대 연극, 소설 등에 등장하는 나쁜 역할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 Calming Music With Singing Bowls

https://www.youtube.com/watch?v=q9ZJ9i4xpdI




'돌멩아.. 네가 좀 져 줘 그냥..'

잠시 외출하고 있던 푸바오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작업장엔 나를 포함해 10명이 출근하고 있다.

올 초 입사할 때보다 선생님들이 많이 늘었다.

닉네임을 읊어보자면,


1. 꽃분할모님

2. 초롬이모님

3. 랄라이모님

4. 맥주사모님

5. 맥가이버님

6. 푸바오 (사장님)

7. 헛기침아재님

8. 왈가닥매니저님 - 왈매님

9. 평온한 매니저님 - 평매님

10. 돌멩이 실장님


오늘의 주인공은 꽃분할모님이다.

닉네임 작명의 이유는 항상 큼직한 꽃들이 그려진 옷들을 입으시기 때문이고

연세가 좀 있으시기 때문에 '할머니' + '이모님' 해서 '꽃분할모님'으로 정했다.


(닉네임은 기분(?)과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푸바오에게 전화가 온 이유는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꽃분할모님이 푸바오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하.. 한동안 조용했는데 다시 시작인가.


이 지경이 벌어진 전말은 이렇다.

꽃분할모님이 자신의 공정 과정에 필요한 선행 작업을 나에게 부탁했고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그 일이 미뤄진 상황이었다. (그 선행작업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도 굳이 안 그래도 됐었는데 계속 닦달을 하시니 반골 기질이 발동해서

급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하며 꽃분할모님 속을 긁었다. 그리곤 못난이 멘트도 내뱉었다.


"아, 몸이 하나잖습니까! 이것 좀 하고 할게요!"


그리곤 중얼하시며 뒤돌아서 자리로 가셨는데 그때 푸바오에게 전화를 하신 것 같았다.


근데 아우 또 열받는 게 내가 선행작업 시작하려고 하니까

갑자기 당신께서 와서는 자기가 할 거라고 너 일 보라고.



으아악!!!





'솔직히 좀 못됐긴 했어.'

둘만 남은 작업장에서 푸바오가 말했다.

푸바오도 꽃분할모님의 성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 특유의 성미는 공장장이신 '맥가이버'조차 정면으로 맞서지 않기에

작업장 식구들은 웬만하면 그녀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입사 초기부터 우리는 왕왕 부딪쳤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불타지만 실력도 불타는 무경력 신입

VS 자신만의 철학과 고집이 있는 꽃분할모님>


그렇게 지금껏 반년을 투닥하며 지냈다.


그간 업무에 대한 정보로 할모님을 이겨먹으려고 한 적도 있다.

가진 경험이 부족하니 산출된 업무 데이터로 당신을 꺾으려고.


그러나 사실관계를 정확히 설명하고 명확한 이유를 들어 설득해도

절대 이런 사람을 면대면으로 꺾을 수는 없었다.


대개 이런 사람은 자존심도 무척 강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불리하면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라며 자리를 피하셨다.


게다가 진짜 손자 뻘이라 이긴다고 해서 까맣게 곪은 내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나에게 있어 이 사람은 흉악 그 자체인 '빌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일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빌런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맞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선 사사건건 팀원들과 맞부딪쳤다.


'CCTV 돌려보시면 될 거 아닙니까? 제가 맞는지, 00 씨가 맞는지.'


실제로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정말이지 떠오를 때마다 역겹다.

굳이 저렇게까지 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당시 동료들이 나를 얼마나 불편하게 느꼈을까?




꽃분할모님과 나이 차이만 해도 어떤가. 최소 30년 이상 차이가 날 텐데.

(이 업계는 작은 공방이 아니고서야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하긴 우리나라 제조업이 다 그렇지..)


제조업 얘기에 갑자기 샛길로 새는데,,


제조업에 요 몇 년 간 근무하면서 느낀 것이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

'알바만 하면서 그냥저냥 살아가려고 한다.'


라는 말이 회자된 지 벌써 좀 되지 않았는가?


아니 그런데 나처럼 생각 없고 특이한 놈 말고도 착실한 젊은이들이 그런 업계에서도 비전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와 기업이 만들어 주어야 근로자 평균 연령대도 내려가고 하지 않겠나?


일하고 싶은 직장이 아닌데 미쳤다고 누가 전라도까지 내려가서 컨테이너 만들고

누가 도자기 공장에서 상하차 하고 싶겠는가! (에?)


또 우리 세대에게 힘겹게 노동하며 살지 말도록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가라고 부르짖었으면서

어떻게 우리 세대에게 그렇게 비난할 수가 있냐는 말이다!

자기 자식들이 이런 3D업종 종사자 되는 건 싫어하면서!


나도 내 또래들하고 일 하고 싶다고!!

일 끝나고 맥주집도 가고회식으로 소주에 삼겹살 먹고, 2차로 노래방에서 빵댕이도 흔들고 싶다고!!


왜 맨날 흑염소 집에서 회식이냐고!!

(*흑염소는 굉장한 보양식으로, 실은 아주 만족하며 감사히 먹고 있습니다..)


아무튼 나조차도 내 부업거리가 잘 되어서 얼른 이 파란 셔츠를 벗고 싶은 건 안 비밀이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의 제조업을 응원한다..




그래도 꽃분할모님이 나이가 있으셔서 이번 여름을 견디는 동안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얼마 전엔 곧 그만두신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렇게 감정싸움도 많이 했지만 사랑니 발치로 인해 퉁퉁 부은 내 하관을 보며

손주 보듯 안쓰러워하시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에휴.. 내가 뭘 얻겠다고 이러나. 더 배려하고, 더 이해하고, 더 나 자신을 돌아봐야지..


게다가 관계가 틀어져봐야 다 같이 힘들어질 것이 눈에 훤하다.

버거운 일은 다 같이 함께 해야하는게 작업장 아니겠나.




아무튼 할모님!!

오늘 난 일러라 일러라 일름보입니다.

저는요 어디 속앓이 할 곳도 없고요 이렇게 일기장에 푸념을 놓아봅니다.

한 직장에 빌런이 둘이 될 수는 없기에 할모님께 그 자리를 순순히 내어드리겠습니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그 특유의 성미,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받으시길 소망하며 일기를 마칩니다!


P.S. 욕 많이 잡수시면 오래 산다잖아요... 파이팅입니다! 사.. 사....      사태찌개 먹고 싶네요!




아우 깨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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