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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Feb 21. 2020

우리나라 경제사의 황금기는 언제일까요

김재호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X 우디 앨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오웬 윌슨)은 작가입니다. 그는 세속적인 약혼자 이네즈(레이철 맥아담스)에게 염증을 느끼고, 약혼자를 두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합니다. 밤늦게까지 걷던 길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타난 차에 올라타게 되고 그곳에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그 날 이후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난 주인공 길은 평소에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과거 여행을 하던 길은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애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면서 영화는 절정에 다다릅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중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세계적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작품으로써, 예술과 낭만이 가득한 파리의 밤거리를 매력적으로 보여줍니다. 파리의 밤거리를 아름답게 비춰주는 영화는 그 자체로써 큰 가치가 있지만, 영화가 안겨주는 깊은 울림은 다음 대사에서 나옵니다.

If you stay here, it becomes your present then pretty soon you will start imaging another time was really your golden time. That's what the present is. It's a little unsatisfying because life is so a little unsatisfying.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그만두고 과거와 현재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함께할 수 있는 꿈같은 과거와 약혼자와의 갈등과 작가로서의 뚜렷한 성과가 없어서 불만족스럽게 느껴지는 현재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황금시대는 항상 과거에 있다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도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경제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보다는 항상 과거가 황금시대인 것만 같죠. 하지만 한국사 전체를 돌아보면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공업화와 경제성장이 있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은 기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경제사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어쩌면 지금이 황금시대 일 수도 있다는 걸 김재호의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를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전근대 시대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파괴하는 악역을 담당할 것 같다. 산업혁명으로 근대 경제성장이 시작되기 이전의 사회는 '맬서스 함정'에 빠져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술 진보의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더라도 인구 증가로 인해 생활수준의 지속적인 상승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다. 우리는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기근이 반복되는 세계를 쉽게 상상항 수 없다.

김재호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p.14

맬서스적 함정

 맬서스적 함정이란 무엇일까요. 영국의 성직자이던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는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식량생산 증가에 비하여 인구의 증가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맬서스 이론으로 인류는 결국 결핍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맬서스 함정이란 맬서스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인구가 정체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래 그래프는 산업혁명이 있기 전에는 맬서스 함정에 빠져서 1인당 소득이 정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맬서스 함정으로 세계 인구가 정체된 이유는 산업혁명 이전에 주요 생산수단이 농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농업은 수확 체감 법칙(자본과 노동력의 추가에도 생산량이 정체되는 현상)이 작용합니다. 일정한 토지에 노동력을 많이 투입하여도 식량 생산량 증가에는 한계가 있죠. 식량을 늘리려면 토지가 급격히 늘어나거나 기술의 발전으로 같은 땅에서도 생산량이 상승하여야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 이양법과 이모작의 농업기술 발전이 있었지만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농업시대에는 맬서스적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김재호의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에서 경제사 관점에서 한국사의 흐름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세기 일제강점기부터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빈곤(맬서스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늦었습니다. 그 이전 선사시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 시대 이앙법과 이모작처럼 농업 기술의 발전은 있었지만 수확 체감 법칙의 적용을 받는 농업의 특성상 맬서스 함정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사극에서 비치는 낭만과 달리 우리나라 역사의 경제사는 기근이 항상 함께하였습니다.


급속한 경제성장

  19세기에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해방과 동시에 국가를 건설하고 한국 전쟁을 겪었습니다. 혼란의 시기를 지나서 1960년대에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룹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 ⓒ한국은행
 이러한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기적'을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다. 나라 안팎의 수많은 요인이 절묘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우선 후진국에서도 공업화를 시작할 수 있는 유리한 국제 환경이 제공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의 공업 기술이 고도화되고 임금이 급속히 상승하게 됨에 따라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은 채산성이 맞지 않게 됐다. 공장을 후진국으로 옮기거나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공업 부문뿐만 아니라 전자, 조선, 철강, 자동차와 같은 중화학공업 부문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이 선두에서 한국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를 이끄는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양'과 같은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p.271

 일 년에 최대 40%까지 성장하는 고성장 시대에 모두가 희망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성장률이 낮아지고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2000년대부터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2018년 1인당 국민총생산이 3만 달러를 넘어섰어도 사회적으로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목소리가 가득 찬 이유입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단위: 달러) ⓒ한국은행

 저성장 시대에 머물러 있는 우리는 과거의 고성장을 그리워합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과거의 향수를 기반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과거 고성장기 시대가 우리나라의 경제사의 황금기였을까요?


 처음에 말했던 <미드나잇 인 파리>의 대사를 떠올려봅니다. 현재는 늘 불만스럽습니다. 상상 속의 과거가 황금기이고 동경하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할 때 장점만은 있지 않았습니다. 물가는 20% 이상 상승했습니다. 민주화의 진행으로 사회는 불안정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근로 여건은 좋지 않았으며, 약자를 대변하는 사회적 기반은 부족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통계청
 성장률이 낮다고 고도성장기의 정책을 다시 불러내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문제는 성장률 하락이 급격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부 부문이나 민간 부문 모두 낮은 성장률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고 적절한 성장률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는 점이다.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p.282

 제사의 과거를 황금기로 여기고 부러워하기보다는 앞으로의 미래에 집중해야 합니다.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의 저자 또한 장기간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경제 규모가 커지면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동과 자본으로 대별되는 생산요소의 양적인 투입 증가로 성장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기술혁신에 의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 표준화된 지식을 수입하여 학습하는 것에서 벗어나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 전반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떠한 지식이 유용할 것인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지식과 직결된 기술의 장기적인 경향은 큭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1) 기계를 이용한 인간 능력의 확장, (2) 질병과 노화의 극복, (3) 경제적인 에너지의 개발.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p.284

 한국사를 살펴보는 책이지만 마무리는 미래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어쩌면 경제사에서 황금기는 평생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다면 황금기를 그리워하기보다는 미래의 황금기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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