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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May 13. 2020

무엇보다 디플레이션부터 벗어나야 한다

홍춘욱 <디플레 전쟁>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논의되지 않던 디플레이션이란 용어가 요즘 자주 보인다. 디플레이션이란 무엇일까? 디플레이션(deflation)은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플레이션(inflation)의 반대 개념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하락하니 화폐의 가치가 상승한다.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 된 디플레이션(이하 디플레)은 왜 언급이 되는 것일까? 디플레가 인플레보다 경제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홍춘욱 박사의 <디플레 전쟁>에서는 디플레가 무서운 이유로 두 가지를 말한다. 장기불황과 소비와 투자의 연쇄적인 어려움으로 시작된 경제의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첫째, 디플레는 결국 '장기불황'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0만 대의 생산 캐파(Capacity, 생산능력)를 가진 자동차 회사가 있는데, 판매량이 90만 대에 그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회사는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더 나아가 고용하고 있던 파트타임 근로자들을 해고하려고 들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1년이 아니라 2~3년 이상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이 회사의 자동차 가격은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정규직 근로자들마저 해고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동차 가격이 떨어지니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해고되고, 기업이 경영난을 맞아 판매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차를 저렴하게 파는 것이 경제에 좋은 일일까?
 둘째, 소비와 투자가 연쇄적으로 얼어붙게 된다.
 생각해보라! 앞으로 제품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누가 정가를 주고 물건을 구입하려고 들까? 물가가 지속적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자리 잡으면, 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할 의욕을 가지기 어렵다. (...) 따라서 디플레이가 시작되면 경제에 지속적인 악순환이 발생한다. 기업들은 혁신을 게을리하고 근로자들을 해고할 것이며, 가계는 소비를 미루고 저축에 몰두하게 될 테니 말이다. p.15

 장기불황을 가져오는 디플레의 위험성으로 저자는 '해결의 용이성'을 추가로 말한다. 인플레와 하이퍼인플레는 역사적으로 해결한 경험이 있지만, 디플레는 해결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하이퍼 인플레를 해결한 역사로는 볼리비아를 소개한다. 연 2만 4,000%나 되는 인플레를 경험하던 볼리비아는 세계적인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교수가 제시한 석유 가격 인상이라는 해결책으로 하이퍼 인플레를 종결시킬 수 있었다. 현재 하이퍼 인플레를 경험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같은 경우도 휘발유에 대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방만한 석유 소비를 부추기는 행동을 멈춘다면 하이퍼 인플레의 기세를 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디플레는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다. 1989년 버블이 붕괴된 후 일본 경제는 20년이 넘게 경기가 침체되었다. 바로 일본의 중앙은행의 잘못된 통화정책으로 디플레를 겪었기 때문이다. <디플레 전쟁>에서는 "왜 디플레가 시작되면 정상으로 되돌리기 어려울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두 가지 이유를 소개한다.

 첫 번째로 통화정책이 무력화된다. 디플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요 정책으로 금리 인하를 꼽을 수 있다. 금리를 인하하여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려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금리가 0%가 되면 사용할 정책 수단이 없다. 책에서는 이를 '제로금리 한계(Zero Rate Lower Bound)'라고 소개한다. 유럽 은행과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하였지만, 이는 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는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해서만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된다.

 두 번째로는 디플레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화폐의 가치가 상승하면 우리의 월급의 가치는 올라간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황에 고통받는데 인건비 부담까지 올라가서 해고에 이를 수 있다. 근로자의 해고는 소비를 위축시키고 위축된 소비는 기업의 이익 훼손으로 악순환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부채 부담의 증가다.

 1990년에 도쿄의 맨션을 구입할 목적으로 금리 7%에 5,000만 엔을 대출받은 가계를 생각해보자. 1990년 이후 2016년까지 도쿄의 주택 가격이 약 60% 이상 빠졌으니, 이 가계는 최악의 시점에 주택을 구입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주택 가격이 폭락했는데도, 이 가계는 매년 7%, 즉 350만 엔의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빌릴 때 약속한 이자를 갚지 않는 순간 은행은 대출을 회수할 것이며,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결국 이 가계는 이를 꽉 깨물고 아껴서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 (...)
 결국 디플레가 장기화되면 부채를 짊어진 가계와 기업이 파산하고, 이는 다시 은행의 위기로 전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p.166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이익이다. 빚을 갚느라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 이익은 줄어들 것이고, 경제의 활기는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디플레의 위험에서 자유로울까? <디플레 전쟁>에서는 우리나라도 디플레 위험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한국의 GDP갭과 미국의 소비자물가 하락이다.

 'GDP갭=잠재 GDP-실제 GDP'이다. 잠재 GDP는 한 나라에서 가능한 생산 능력을 나타낸다. GDP갭은 경기의 과열과 침체 상태를 보여주는 척도로써 GDP갭이 (+)이면 과열, (-)이면 침체를 말한다. 경제가 과열 상태에서는 인플레가 일어나기 쉽다. 반대로 GDP갭이 마이너스 이면 침체로 소비자물가의 상승은 더딜 수밖에 없다. 한국은 현재 GDP갭이 마이너스이며, 디플레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두 번째로 한국과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는 생산성의 향상과 세계화의 가속화로 인한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계속된 생산성의 향상은 소비자물가는 하락하는 압력을 받는다.

 일본 경제처럼 디플레 위험에 처한 한국 경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코로나 19로 기준금리는 0.75%로 0%대에 진입했다. 금리를 내릴 공간이 많지 않다. 남은 카드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다. <디플레 전쟁>의 부재인 "무엇이든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코로나 19로 경제의 주체인 기업과 개인이 위축되었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디플레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당장"의 의미는 역사적으로 정부가 재정 정책을 시행했을 때는 경기 침체가 벗어나고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무엇이든" 재정 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우리나라의 재정이 악화되어서 외국 자본이 이탈할 것이다'는 걱정이 대표적인데, 이는 디플레의 위험에 비하면 덜 위험하다. 미국 정부의 경우 재정적자가 4월에 7,380억 달러를 기록할 만큼 역대 최대치지만 GDP 대비 이자부담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치인 만큼 이자부담이 적다. 우리나라 환율이 안정된 만큼 경제 펀더멘탈도 다른 신흥국(브라질, 터키 등) 보다 강하다. 외국 자본의 유출을 걱정하는 것보다 적기에 시행되지 않은 재정 정책으로 인한 디플레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이다.


 디플레는 경제 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통계청에서 소비자물가를 발표하면 뉴스 제목은 디플레를 우려한다. 하지만 댓글과 같은 여론은 "물가가 상승하는데 무슨 소리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정부가 추경을 시작하고 재난지원금을 시행한다고 하면 정부 재정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많다. 그런 분들에게 <디플레 전쟁>으로 반대 의견을 듣고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이 책을 추천한다. 전쟁이란 표현을 쓸 만큼 디플레는 무찔러야 하는 대상임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믿는다. 책 마지막에는 디플레 시기에 적절한 투자 방법도 알려주니 코로나 19로 닥친 위기상황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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