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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Jan 06. 2023

무제 1

 1. 월트 휘트먼의 시에 나오는 구절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가끔 내가 하는 행동들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본다.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반성할 건 반성하고 고칠 것은 고친다. 현재의 달라진 내가 앞으로 나아가며, 미래의 나에게 소설의 복선마냥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럼 단서를 잡아챈 미래의 나는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직조해 나간다.  

    

 2. 나는 요즘 시간이란 것이 참으로 덧없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는데 그런 내가 벌써 30대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또, 설렌 마음을 안고 대학교 입학식에 참석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나와 대학생활을 같이 할 동기들과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이 피었던 그때를. 하지만, 시간이란 녀석은 어느덧 무섭게 우리의 목덜미를 죄어왔다. 나는 군대에 다녀왔고, 또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시간이 지나 취업을 했고, 마지막으로 퇴사도 했다. 이제는 어깨가 무거워진걸 새삼 느낀다. 20대 때는 당장 뛰쳐나가서 나의 에너지를 불태워 무언가를 이뤄냈다면,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다. 저축을 해야 하고, 사랑도 해야하며 노쇠해지는 부모님도 돌봐드릴 나이가 되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까지 소년에 머물러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마음은 그대로인데, 육체는 점차 늙어간다.     


 3.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에 인생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분명 지금은 운명을 달리한 전 세대 사람들도, 과거에는 나처럼 두 발을 대지에 딛던 살아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그들의 생이 끝나고, 이어달리기의 주자처럼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바톤을 넘겨받았다. 나도 언젠가 관에 들어갈 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현생이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지곤 한다. 아, 고작 100년 채 남짓 안되는 인생이 얼마나 길면 길고, 또 얼마나 짧으면 짧은 것인가? 내가 죽어도 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모두가 언젠가 잊혀지겠지만, 나는 가끔 역사속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TV에 나오는 유명인처럼 큰 업적을 이뤄보고 싶기도 하고, 뭔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전시하고도 싶다. 하지만 그럴 재능은 없고, 끈기도 별로 없다. 난 그냥 평범한 사람임을 요즘 절실히 깨닫는다. 

    

 4. 잘하는게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내가 시간이 지나서도, 내 실력으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는게 무엇인지를 고민해본다. 한때는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업작가를 해볼까도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내 예상과 달리 너무나 치열했다. 모두들 책 한 권씩은 출판했을 정도로,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들이었으며 나같이 가끔씩 글을 끄적거리는 아마추어는 어딘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냥 집에서 조용히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식힐겸 글쓰는 것으론 돈을 벌 수 없었다. 무언가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했다.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5. 프랑스의 작가 몽테뉴가 평생을 걸쳐서 썼다던 에세이가 요즘 떠오른다.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 삶을 달관한 듯한 작가의 초지일관, 세상 사람들과 교류를 끊고 독수공방하며 삶에 대해 사색하는 몽테뉴는 얼마나 고독한 삶을 살았을까? 글로써 온전히 자신을 나타낸 몽테뉴의 삶을 보면 인생이 뭔가 덧없다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때로는 나도 몽테뉴처럼 책 몇 권 분량의 인생 서적을 써보고 싶다. 나만의 관점이 녹아든, 나라는 인간의 삶의 기록이 명확하게 적혀 있는 그런 일대기와 경험담을 말이다.      


 6. 순간순간이 죽음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우린 인생의 대부분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때로 죽음이 우리의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고, 우리와 전혀 관련없는 그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TV에서 나오는 자연재해, 천재지변, 인간의 사고 때문에 벌어지는 모든 가슴 아픈 피해들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란 것은 참으로 기적적인 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내가 사는 집이 1초 후에 무너질 수도 있고, 갑자기 지진이 나서 땅 아래로 꺼져버릴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또 운전을 하다 언제든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매 순간순간 죽음의 덫에서 벗어나며 생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감사해야 할 것. 비록 현재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불평이 가득한 장난꾸러기의 악담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현생에 감사해야 한다. 살아있는 것 자체로도, 우린 하나의 기적을 이뤄내고 있는 거니까.     


 7. 어느 순간부터 거울을 마주하면 나는 공포를 느끼곤 한다. 얼굴에 핀 나의 주름, 쥐젖, 그리고 점차 넓어지는 이마라인을 보며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는 나름 탱탱한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훈남에 속했는데 지금은 배가 불쑥 나온 구닥다리 아저씨로 변모했다. 여기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내 모습은 더욱 바뀌어있겠지? 이대로 시간이 쭉 흘러 노인이 된다면 내가 내 모습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의 노화를 늦출 순 있다곤 하지만, 막을 순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점점 거울을 보기가 두려워진다. 나중에는 얼굴에 검버섯도 피어날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8. 과연 인생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이란 것이 있을까? 누군가 보았을 때 옳다고 생각한 길이, 또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방향이 아닐까? 한편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무모하다고 생각한것이, 또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열정이 아닐까? 인간은 선택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개체이다.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건, 과거의 내가 고를 수 있는 수많은 사항들 중에서 하필 현재에 이르는 그것들만을 선택하여 이루어진 결과물이란 것이다. 그 선택의 순간 하나하나들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사회는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그렇다면 성공한 삶이란 무엇일까? 많은 재산과 높은 명예?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 쉽게 남의 인생을 재단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더욱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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