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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Mar 23. 2023

파란 나비

 어느 폭풍우 치는 밤이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깊은 새벽 무렵, 보이는 것이라곤 등불 하나에 의지한 채로 마차 한 대가 가파르게 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마차에는 한 남자와 죽을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그의 아들, 그리고 말을 모는 마부가 타고 있었다.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마부에게 외쳤다.     


“제발, 빨리 달려주시오! 아들이 죽어가고 있소!”


 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빗길을 내달렸다. 양동이를 쏟아내듯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때문에, 마차가 내딛는 길바닥은 진흙투성이였다. 바퀴가 수없이 땅바닥에 걸리거나, 땅 아래로 푹푹 빠져만 갔다. 마차는 간신히 앞을 나아가며 의원(醫院)으로 향했다.     


 말을 몰고 있던 마부에게 문득,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들려온 꺼림칙한 소문이 생각났다. 폭풍우 치는 밤이 될 때면 파란 나비를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눈 깜박할 새에, 파란 나비의 날갯짓이 사람들을 현혹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는 소문이었다. 마부가 남자에게 말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미심쩍은 게 있어서 내 말하는 것이 하나 있소. 내가 살던 마을에 괴상한 소문이 하나 돌고 있는데, 폭풍우 치는 밤에 파랗게 생긴 나비를 조심하라는 것이오. 나비를 보는 순간 녀석의 아름다운 날갯짓에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이유도 모를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오.”


 남자는 마부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마부가 마차를 몰아가던 와중, 마차에 달린 등불의 빛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등불을 자세히 살피려고 손을 뻗던 마부는 이상한 물체가 불빛 주위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불빛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파란 색깔의 나비였다. 파란 나비는 날개를 펄럭이며,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어딘가로 향하는 것만 같았다. 마부는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바꾸더니 다시 말을 몰기 시작했다. 남자가 말했다.   

  

“갑자기 왜 방향을 바꾸는 것이오? 어서 빨리 가던 길을 마저 가시오!”     


 마부가 말했다.

     

“내가 지름길을 알고 있소. 나를 믿으시오”

    

 마부는 재차 자신이 지름길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거세게 말을 몰아댔다.

      

 파란색 나비는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마부의 정신을 점차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파란 나비를 쫓아가던 마부에게, 원래 도착하려던 의원과는 다른 정반대의 장소가 나타났다. 그곳은 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낭떠러지 앞이었다.     

 

 낭떠러지 앞에 이르자, 파란 나비가 날갯짓을 하며 마부를 유혹했다. 마부는 마차를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소스라치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부는 허공을 바라보며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만 같았다.

     

“저 나비를 따라가야 하오! 파란 나비를, 파란 나비를 따라가야 하오!”   

  

남자는 마부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파란 나비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당신은 지금 미친 게 틀림없소. 어서 빨리 마차를 몰아 의원으로 다시 가시오!”

     

 파란 나비는 훨훨 날아다니다가,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절벽 부근의 바위에 내려앉았다. 마부는 파란 나비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몸부림쳤다. 이미 마부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나비를 잡으려고 절벽 아래의 바위로 내려간 마부는, 나비가 있는 곳을 향해 두 손을 쭉 뻗었다. 왠지 나비가 닿을 것만 같던 순간에, 마부는 무언가에 걸려 발이 미끄러졌다. 마부는 그 상태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하고야 말았다.      


 마부의 목숨을 앗아간 나비는, 마차로 다가오더니 남자의 아들 주변을 살랑살랑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들은 젖 먹던 힘을 내서 마차의 문을 열고 파란 나비를 찾았다. 그리고 나비를 쳐다보더니,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파란 나비가 저를 찾고 있어요...”     


 파란 나비는 허공을 날아다니다가, 이내 병든 아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남자는 나비를 쫓아내기 위해 길바닥에서 주먹만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남자 역시 제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남자가 말했다.

    

“나비를... 파란 나비를 죽여야 돼!”

     

 남자는 아들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나비를 보자, 돌멩이를 단단하게 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아들의 머리를 돌멩이로 내리찍었다. 퍽 소리가 나더니, 아들의 머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찢어진 아들의 머리 사이로 빗방울이 흘러 들어갔다. 이 상황이 재밌는 듯, 파란 나비는 아들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폭풍우가 그치고 아침이 밝아왔다. 정신을 잃었던 남자는 햇살을 받고 깨어났다. 그의 옆에는 머리가 찢어진 채 죽어 있는 아들이 누워 있었다. 남자는 절규하며 말했다.

      

“파란 나비의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내 손으로 내 아들을 죽였구나...”

     

 남자는 낭떠러지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앞에 파란 나비가 날아다녔다. 그는 나비를 잡으려고 손을 쭉 뻗었다. 그러나 나비는 남자를 조롱하듯, 날갯짓을 한번 하더니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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