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11.
2020.12.30
“서윤아. 오늘은 여기까지 풀자. 어려운 문제인데도 잘 따라왔네. 잘했다."
”아버지. 오늘 같이 저녁 드실래요?”
몇 번을 물어도 같은 대답을 알면서도 서윤은 다시 한번 물어본다.
“아니. 오늘은 곤란해. 다음에 같이 먹자."
난처한 표정으로 뒤돌아선 아버지가 점처럼 멀어져 버리는 꿈을 꿨다. 매번 반복되는 꿈이었다.
꼬마 서윤이 아버지에 대해 물었을 때면 어머니는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는 서윤이처럼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엄마가 본 누구보다 수학을 가장 잘했다고. 서윤이 눈을 반짝이며 그럼 아버지를 만나 같이 수학 공부를 할 수 있냐고 물을 때마다 엄마는 나중에, 서윤이가 아빠만큼 수학을 잘하게 되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엄마는 서윤에게 허튼소리를 내뱉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말 아버지가 서윤의 앞에 나타날 거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남들이 다 갖고 있다고 해서 나 역시 꼭 아버지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둘이 사는 삶에 부족함은 없었다. 서윤의 엄마는 항상 바빴지만 따뜻하고 충만한 사람이었다. 비싼 학원에 다닐 만큼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윤이 다니고 싶다고 한다면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지 서윤은 어떤 학원도 다닐 이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중학생이 된 서윤에게 엄마가 낯선 어른을 만나보라 했을 때, 낯선 어른이 애틋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봤을 때, 지금까지 만난 어떤 사람보다도 수학을 잘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서윤은 엄마가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윤은 아버지가 서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했던 건지 단순히 수학문제를 같이 푸는 게 좋았던 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수학을 못 하게 되면 아버지를 못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열심히 문제를 풀었을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서윤 역시 아버지와 같은 대학의 같은 과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수학을 잘 헸다. 그렇지만 서윤은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갖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을 시작하며 수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병원의 매출을 확인하는 일도 수학이라면 모를까.
아버지에게 서윤은 어떤 사람일까. 한 때는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낳아 기른 아들. 아버지가 서윤의 존재를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서윤을 받아들이고 엄마의 곁에 남았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아버지의 가족들에게 서윤에 대해 말했을까.
“이제 수학은 제가 혼자 공부할 수 있어요.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
”서윤아.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해. 전화번호 알지?"
”네. 건강하세요.”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였다. 아버지는 서윤의 인사를 받고도 서윤을 잡지 않았다. 서윤이 아버지의 가족들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서윤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서윤으로 인해 그 어떤 것도 잃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윤은 아버지가 한번 정도는 서윤을 잡을 거라 기대했었다. 아니면 그 후로 한번 정도는 서윤에게 먼저 연락을 해 줄 거라 믿고 있었다. 서윤과 헤어지며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던 아버지가 한 번 정도는 뒤돌아 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꿈속에 나타나 몇 번이나 계속 등을 돌렸다.
서윤이 민경에게 오래 미루었던 대답을 한다.
“나 같은 사람. 나를 보는 것 같아 그냥 둘 수가 없는 사람. 그래서 마음이 쓰이고, 계속 생각이 나는 사람.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도 알아. 내가 은우를 좋아했어. “
서윤의 대답에도 민경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지금이 중요한 거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