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12.
우주에 있는 많은 별들은 쌍성입니다. 두 개의 별이 서로의 만유인력으로 묶여있다는 뜻인데요. 우주에서는 태양처럼 혼자 있는 별들보다 쌍성으로 존재할 확률이 높습니다. 두 별은 같이 태어난 쌍둥이 별이라 성분이 같고 꼭 닮아있어요. 둘 사이에서는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하고 있는데도 두 천체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아요. 태양과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도 마찬가지잖아요. 만유인력이 구심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주위를 돌고만 있을 뿐, 가까워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더 멀어지지도 않아요. 정해진 위치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죠. 애초부터 질량이 다른 경우 한쪽이 주성이 되는데요. 신기하게도 질량의 큰 별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질량이 더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주성이 바뀌게 됩니다.
2021년 2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번 연락이 너무 늦어져서 기다리셨을 것 같아요."
나연이 은우에게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 은우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하고 최종 확인을 받기 위한 과정이었다.
“의뢰하면서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까지 진행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감사드려요."
“저야말로 끝까지 맡겨주셔서 감사해요. 외뢰인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저희도 포기하지 않거든요. 이제 정말 최종 과정만 남았어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진동 전달 전 의뢰인과의 마지막 화상 미팅이었다. 나연은 은우에게 마지막까지 궁금했던 질문을 해보고 싶어졌다.
“혹시 제가 한 가지 여쭤봐도 되나요? 꼭 대답하실 필요는 없어요. 마지막 메시지 선택할 때 오래 고민하시지 않았잖아요. 혹시 처음부터 생각하고 계셨던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사람이 살아있다 해도 아니면 그게 아니라고 해도 제가 보낼 수 있는 메시지는 한 가지인 것 같았어요. 살아있는데도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거라면 마음이 떠난 건데, 그동안은 왜 모른 척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 말을 해야 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어요. 보내줘야 하잖아요. 나한테는 인사를 안 하고 간 게 슬프지만 저라도 해야죠.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싶어요. 제가 그동안 한 번도 못했거든요. 누군가와 헤어지면서도 언제가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 헤어졌어요. 마냥 기다리다가 계속 기다리다가 그냥 지쳐서 무뎌지게 되는 거 있잖아요. 엄청 바보 같은 사람이죠."
”아니에요. 저도 그런 적 많아요. 분명 헤어졌는데 연락이 올 거 같아서 기다렸던 경험, 누구나 있지 않을 까요. 몇 번을 반복하다 지쳐서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생각하고."
”살아있지 않더라도 보내줘야 하는 건 같으니까요. 아무 말도 없이 보낼 수는 없잖아요. 처음에는 저도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일인가 싶었어요. 그냥 마음을 잘 정리하면 되는 건데. 그런데 참 이상하더라고요. 이게 그냥 기술적인 부분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제가 계속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전달해야 하나 생각하는 게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마치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마지막 만남이겠지만."
”위로가 되셨다니 다행이에요. 이번 진동 전달이 잘 되면 좋겠어요. 진심입니다."
2021년 2월.
은우가 카페 문을 열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서윤이 은우를 먼저 발견하고 한 손을 번쩍 들자 은우가 서윤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사이였지만 둘은 모두 한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단정하고 반듯한 서윤의 자세도 맑은 눈빛으로 상대를 깊게 쳐다보는 은우의 표정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서윤은 은우를 바라보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 생각했다. 은우의 눈빛도 서윤이 은우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도 7년 전 그대로였으니까.
”오래간만이다.”
“오빠는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 교수님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만 달라졌나 봐요."
“너도 똑같네.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놀랐어. 여기까지 올 줄도 몰랐고."
“저도 망설였어요. 너무 오래간만이기도 하고. 그래도 오늘은 의뢰인으로 온 거니까요. "
“뭐든 이야기해.”
“궁금한 게 있어요. 부탁이기도 하고요."
모든 건 달라지지 않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서윤을 향한 은우의 마음. 그때는 투명하게 보였던 은우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제 일 때문에 누군가 칠레에 가야 하나요?"
꼭이냐고 물어본다면 누가 꼭 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Cycle7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이 칠레에 가지 않는 것처럼 서윤의 진동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칠레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제미니 천문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 과학자들의 손을 빌리면 되는 일이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어."
”제가 가고 싶어요. 누군가 가야 한다면 제가 갈게요. 아니요. 꼭 안 가도 된다 해도 저는 갈 거예요. 그래서 칠레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제가 할게요.”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서윤을 보며 은우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가고 싶던 곳이었어요. 아타카마 사막이잖아요. 진작 가 봤어야 했어요. 기다리기만 할게 아니었는데 이제야 알았네요."
서윤이 대답을 하지 않자 은우가 당황한 기색으로 다시 말한다. 서윤의 침묵을 은우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 버렸다.
“아. 당연히 제가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제가 해 보겠다는 게 아니라, 제가 갈 거니까 혹시 제가 해도 되는 일이라면 제가 한다는 뜻이에요.”
“알아. 길게 설명 안 해도 돼. 나도 생각해 볼게.”
일 이야기 말고 묻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잘 지내는지, 잠은 잘 자고 밥은 잘 먹는지. 그때 너를 그냥 두고 일본으로 갔던 걸 후회하고 있다고. 내 마음은 그날 밤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서윤은 하고 싶은 말 대신 은우에게 할 수 있는 말을 골랐다.
”내가 가려고. 누구한테 맡길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내 일을 하러 가는 거야. 나도 너처럼 가고 싶었던 곳에 가는 거야. 우리 모두 가고 싶어 했잖아. “
은우는 서윤의 호의에 대해 다른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아 다시 한번 서윤에게 물었다.
“일로 가는 거죠? 제가 아니더라도 가셔야 하는 거죠?”
“일로 가는 것도 너라서 가는 것도 맞아."
은우는 항상 서윤의 진심을 숨길 수가 없게 만든다. 은우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들키지 않았던 마음까지도 너무나 쉽게 들춰내고 만다.
“미안해서 그러는 거라면 안 그래도 되는데. 저는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오빠가 일본으로 간 다음에 마음이 좋지는 않았어요. 오빤 알았겠지만 제가 오빠를 좋아했잖아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괜찮아지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고요. 나만 좋았던 게 아닐 수도 있었겠다. 무슨 일이 있었겠지 싶던 차에 재희 언니 일 건너 듣기도 했고요. 오늘은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예요."
이번에는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서윤을 만나고 싶었다. 거울을 보고 어색하지 않게 웃는 표정을 연습하고, 아껴두었던 옷을 골라 입었다. 서윤에게 나는 정말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서윤에게 또 다른 과거의 짐으로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불쌍해서 마음이 쓰인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때는 나도 몰랐어. 다른 사람들은 눈치챘는데도 정작 나는 내가 너한테 왜 그러는지를 몰랐어. 알았다면 너한테 말을 했을 텐데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 너를 좋아했어. 은우야."
서윤은 이제 망설이지 않는다. 서윤의 오래된 고백을 듣고 은우는 멈칫하지 않았다. 은우는 서윤의 마음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마치 오래전에 이미 서윤의 고백을 들었던 사람처럼 대답한다.
”불쌍해서 그랬다는 것보다 훨씬 좋은데요? 지금이 아니라 그때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면 우리는 달라졌겠죠?"
할 말이 남아있는 것 같은 서윤을 대신하여 은우가 말한다
"그렇지만 오빤 여전히 내게 좋은 사람이에요."
서윤은 하려던 말을 멈춘다. 좋은 사람. 은우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어도 괜찮았다. 서윤은 은우에게 끝까지 좋은 사람이 되어보기로 한다.
“같이 가자. 아타카마 사막으로. 은우야. 내가 너의 진동을 보내줄게."
2020년 2월.
”교수님. 아무래도 실패인 것 같죠. 교수님은 첫 번째 진동 보내고 나서 혹시 응답받으셨어요?"
”아니."
“처음이라 증폭을 너무 약하게 했나 봐요. 혹시 한번 더 헤 볼까요?”
“아니.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기록은 해 두신 거죠?"
“물론”
‘수신자 : 정은우
수신장소 : 서울
증폭정도/송신 횟수 : 약/1회
메시지 : 노래(너의 의미)
수신성공여부(회신여부) :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