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전달 서비스 : 당신의 진동을 전달해 드립니다 #13
2019년.
"은우야. 하늘에서 제일 보고 싶은 게 뭐야?"
“초신성."
”초신성? 왜 초신성인데?”
“이름부터가 정말 이상하지 않아? 별이 죽어가면서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인데 새로운 별이라니. 죽어가는 순간이 가장 밝고 아름다운 것도 앞뒤가 안 맞고. 찬란한 안녕 같은 느낌이잖아. 헤어지는데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랄까”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이건 망원경을 써도 볼 수가 없는 거잖아. 그럼 혹시 흔적만으로도 괜찮아? NSR(초신성 잔해) 같은 거 있잖아. 여기 초신성이 있었다. 이런 걸로는 안 되겠어?”
“NSR이 보이긴 해? 초신성이 폭발하고 남은 잔해라서 가시광선이 안 나오는 거 아니야? 온도가 낮아서 전파만 나올 텐데. 그것도 보통 전파망원경으로는 관측할 수도 없을 걸?"
“아. 배운 사람은 낭만이 없네.”
“볼 수 있겠다.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한 걸 파동으로 변환하면 되니까.”
“그만해라.”
“내 얘기 좀 들어봐. 낭만적이라니까. 이제부터 안녕이라고 하는 대신 파동을 그려야겠다. 있어 봐. 파장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그리면 되나."
은우가 Jay의 손바닥에서부터 팔을 타고 구불구불 파동을 그려나간다.
“간지러워. 그만해. 진짜 간지러워.”
“내가 새겨주는 타투야. 기억해야 해. 꼭.”
2021년 2월
파동의 시작점인 파원은 존재하지만 파동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하는 말은 말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상대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나타난 모든 진동은 세기가 약해질 뿐 의도치 않은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전달되고 있다. 내가 만든 진동이 사라졌다 생각하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누군가를 혹은 어떤 것을 떨게 하고 있다. 어떤 진동에는 의도가 담겨 있지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의도 없이 시작된 진동이 전달되어 깊은 떨림으로 남기도 한다.
은우는 ALMA의 관측 목록 중 NS 1080 초신성의 잔해인 NSR 1080을 선택했다. 이미 폭발이 끝난 초신성은 잔해만 남아 희미한 전파를 내보내고 있었다. ALMA가 수신한 전파를 증폭해서 가능한 여러 방향으로 멀리까지 보내는 것이 서윤의 역할이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어떤 이가 전파에 반응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파동은 어떤 식으로도 누군가에게 반응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다.
‘고객님의 요청대로 진동 서비스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윤은 은우에게 메시지를 전송하였다. 칠레에 함께 오긴 했지만 서윤이 진동을 증폭하는 동안 은우와 함께 있지는 않았다. 은우는 아타카마 사막의 관측 포인트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Jay가 거쳐 갔었던 장소였을 것이다. 서윤은 서윤대로 일이 끝난 이후에 아타카마 사막에 머무르며 칠레에 왔다는 소문을 들은 동기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칠레에 돌아오고 싶었어?"
서윤이 일본에 있을 때에도 칠레에 있던 친구였다. 연락이 될 때마다 귀국하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던 친구는 여전히 칠레에 있었다.
“이상해. 여기 있을 때는 언제 갈 수 있나 그 생각만 헸거든. 막상 작년에 도망치듯이 빠져나갈 때는 엄청 좋은 거야. 근데 한국에 가서는 언제 다시 올까 그 생각만 헸다니까. ALMA가 관측을 시작한다니까 설레기까지 했어. 그리고 지금도 그래. 며칠 전부터는 계속 뭘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거야."
”뭘 시작해. 너 그러다 둘째 생겨."
또 다른 친구가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제동을 건다.
”아 그건 안 되겠다."
”안 될게 뭐 있어. 너 둘째는 완전 신세계야. 진짜 귀여워.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있나 싶어.”
”서윤아 너는 결혼 안 할 거야?"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오. 단서윤. 결혼하는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를 않아."
”뭐야. 짝사랑이야? 누구길래 단서윤을 안 좋아할 수가 있어? 서윤아 그럴 때는 말이야."
친구들이 서윤에게 한 마디씩 말을 보탠다. 결혼을 먼저 했다는 이유로 인생을 앞서 나가는 선배가 된 양 자칭 연애고수들의 조언이 한참을 이어졌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별을 보던 밤이었다. 은우가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문자 받았어요. 저는 여기 좀 더 머무르면서 응답을 기다려보려고 해요. 어떤 응답이든 오기만 한다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견디기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진동을 보내기 전에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왔는데도 그렇네요. 어떤 쪽의 응답이 와도 연락드릴게요. 고마워요.‘
'그래. 조심히 지내.‘
’ 오빠도요. 이제 우리는 과거랑 헤어질 수 있겠죠."
은우가 보낸 문자를 보고 그제야 서윤은 은우가 자신에게 무엇을 하게 했는지 깨달았다. 은우를 대신했다지만 서윤이 보낸 전파였다. 은우의 진동은 은우의 작별인사이기도 했지만 서윤의 몫이기도 했다. 서윤이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재희, 서윤이 아버지라 불렀던 사람, 그리고 그들 때문에 서윤이 붙잡혀 있던 과거를 이제 놓아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우야. 이제 과거가 나를 붙잡지 않을까.’
서윤이 보낸 진동은 누군가를 향한 작별인사가 되어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은우도 서윤도 몰랐던 것이 있었다. 은우와 서윤 역시 서로에게는 누군가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