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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May 30. 2024

여전히, 맑음

기념일을 맞이해 가평 펜션에 갔을 때였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귀여운 커플 잠옷을 나눠 입고, 찬바람을 맞으며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 그가 보일러를 높였고, 그렇게 우리는 잠을 청했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숨 막힐 듯 갑갑한 공기에 잠에서 깼다. 감은 눈으로 바닥을 더듬었다가 뜨거운 온도에 놀라 금세 손바닥을 거뒀다. 갈증을 잘 느끼지 않는 나조차 목이 바싹 말라 왔다. 숙소 냉장고를 뒤적거려봤지만 마실 게 남아 있지 않았다. “자기야 바닥이 너무 뜨거워. 나 목말라...” 곤히 잠든 그의 몸을 흔들었다. 투정 어린 내 목소리에 단번에 잠에서 깬 그는 “보일러를 너무 강하게 틀어놔서 깼구나? 잠깐만” 하더니 망설임 없이 숙소 밖으로 향했다. 차 안에 음료가 하나 있었단다. 뚜껑을 따주며 연신 내게 괜찮은지 묻는다. 


목마르다는 내 말 한마디에 잠에서 깨 외투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함박눈을 향해 걸어가던 그 남자는 나의 남편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의 결혼 3주년이다. 3년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은 변했다. 이사를 했고, 자루를 입양했으며, 다이빙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눈빛, 부드러운 목소리, 다정한 손길들까지.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봄날 속에서도 우리의 사랑은 맑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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