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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Jun 10. 2024

당신은 누구와 함께인가요

“내 신발 하나 가져다 놔야겠다.”


혼자 타지 생활을 하던 연애 시절, 신랑이 내게 했던 말이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신발장에 커다란 남자 신발 하나쯤 두고 지내라고.


평생 겁 없이 지내던 내가 부쩍 조심성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상경한 후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면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라는 메모를 꼬박꼬박 남겼고, 갑작스러운 노크에 놀라는 일이 잦아지자 ‘문 두드리지 말아 주세요’라는 문장까지 더해졌다. 어쩌다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날엔 조용히 휴대폰 화면에 내비게이션을 띄워놨다. 내 화면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과 기사님이 달려가는 길이 같은지, 요리조리 눈 알을 굴려가며 초조해했다. 유난히 빨리 어두워지는 계절의 퇴근길에는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기도 했다. 낯선 공간에서의 모든 것은 내게 혹시 모를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내가 ‘온전한 안전’을 느끼기 시작한 건 신랑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내 신발 옆에 나란히 놓인 그의 신발이 당연해진 게, 배달 음식을 함께 받아 줄 존재가 있다는 게, 역 앞에 데리러 나와줄 사람이 있다는 게 갑갑하게 조여오던 나의 긴장감을 풀어준 것이다.


신랑과 함께 동네를 거닐 때면 새삼 놀란다. 혼자였다면 절대 머물지 않았을 어느 골목길의 한적함을 애정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을 담벼락의 꽃을 두 눈에 담고, 불안감으로 다가왔던 낡고 닳은 건물들이 귀엽게 느껴지는 걸 보면서.


내게 찾아온 불안은 복잡하고도 소란스러운 서울 탓이라 여겼었다. 사실 어디에 머무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누구와 함께 하느냐. 그게 중요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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