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를 망친 돌고래 ep.18
엄마가 내 마음까지 제 것처럼 조종하려 든 것은 처음이 아니다. 조금 자란 내게 틈만 나면 시댁의 갑질에 대해 속삭이더니 "내랑은 이제 남남이지만 니는 그 집 핏줄이니까 도리는 하고 살아야지"라며 명절마다 버팅기는 내 손목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재혼한 새아빠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다. 어린 시절에 엄마를 여읜 자식들의 모든 것을 챙긴 탓에 나이 먹고도 제대로 된 독립을 하지 못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취방에 옷을 가져다 달라든지, 과일 한번 제 손으로 깎아본 적이 없다든지, 어른이 차려준 밥그릇을 비우고 싱크대에 가져다 둘 줄 몰라 소파에 가만히 누워있곤 했다. 유난스럽도록 독립적인 딸을 둔 내 엄마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소식들은 빠짐없이 내게 전해졌다. 어제는 H가 이랬다는 둥. 오늘은 J가 저랬다는 둥. 그녀의 언짢음이 쌓여갈수록 나 역시 그들에 대한 미움이 짙어졌다. 상황은 예고도 없이 급변했다. 엄마는 명절에 H가 건넨 상품권을 받고서 "그래도 애가 약싹 빠르진 않더라"면서 웃었다. 이미 등 돌린 내 마음을 바꾸기는 늦었다. "그래봤자, 난 걔 싫다"는 말에 "가족끼리 좋고 싫은 게 어딨노. 다 잘 지내야지! 닌 꼭 이상한 데서 고집을 피우더라"며 핀잔을 줬다.
오빠 일도 다를 바 없다. 그가 수능을 망쳐서, 대학을 자퇴해서, 취업을 못해서, 엄마 돈을 훔쳐서, 구치소에 가서 내게 올 피해는 없었다. 아니, 없었어야 했다. 강진과 여진이 반복되는 집구석에서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와 철없는 시절을 보냈다 치면 그뿐이다. 그러니 엄마는 그 고통을 혼자 감내했어야 했다. 나와 사이좋게 나눠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형제를 혐오하게 만들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 증오감을 이해심으로 뒤바꾸려 설득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늘 이런 식이었다. 적당히 모른 척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었던 일들을 극대화시켰다. "정아, 내가 이래서 힘들다. 저래서 괴롭다. 얘 때문에 힘들어 죽을 것 같다"며 나를 동요시켰다. 모순을 인간으로 빚어낸다면 그건 내 엄마다. 어떤 날은 교복 입은 여중생들처럼 서로를 공감하며 함께 헐뜯기를 바라다가도, 어떤 날은 성숙한 어른 되어 모든 상황을 중재해 주길 바랐다. 어쩌면 그 모든 걸 다 해내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
우리 엄마는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왜 자식을 저렇게 키워낸 걸까, 미쳐가는 아들을 보고도 왜 집착을 멈추지 못한 걸까, 차마 이뤄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설움을 왜 나와 함께 짊어지려 하는 걸까, 남자에게 질릴 대로 질렸다면서 왜 재혼한 걸까, 잘 지내길 바란다면서 왜 내게 그리도 남의 욕을 해댔을까, 왜 가만히 있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 걸까. 왜. 도대체 왜. 범람하는 의구심과 분노를 끊을 길이 없어 끝내 엄마를 끊었다.
연락을 끊은 지 만으로 1년이 다 되었다. 카톡은 읽지 않은 채 방치하고, 전화는 수신 차단해 두었다. 몇 달 전에는 신랑에게 '엄마가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카톡을 보내왔었다. 장모님이 자궁 관련 암에 걸리신 것 같다며 토끼 눈이 된 그에게 덤덤한 목소리로 "그럴 리 없다"말했다. 그녀는 쉬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해왔고, 매년 정기 검진을 받고 있으니 무언가 발견되었더라도 암으로 발전했을 리는 없다고. 자궁경부암이라는 건 그렇게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고. 반년에 한 번씩 산부인과 검진을 다니고 있는 내 배경 지식과 학창 시절부터 엄마의 목숨으로 끊임없이 협박받아왔던 경험이 만들어낸 결괏값이었다.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그녀가 살아온 날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한테까지 버림받으면 정말 잘못 돼버릴까 봐. 족쇄나 다름없는 엄마를 겨우 끊고 외면할 때마다 그녀는 죽음을 입에 올렸다. "엄마가 죽어버리면 되겠네", "닌 엄마 죽어도 모르겠네", "엄마 죽어야 연락받을래?" 같은. 덕분에 내성이 생겼다. 엄마는 이제 관짝에 누운 채로도 나를 겁박할 수 없다.
친한 언니에게 엄마의 협박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자식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면서.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데 네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때마다 너무 속이 상한다고. 그런가? 그게 그리 끔찍한 일인 줄, 나는 정말 몰랐다. 어릴 적, 피아노 앞에서 한 손가락씩 누르는 음이름을 척척 맞춰대며 '내 절대음감인가 봐!' 으쓱해 댔었는데. 하도 음질 나쁜 멘트를 듣고 자라서 막귀가 돼버린 걸까. 감정쓰레기통은 상처받아야 할 타이밍조차 쉽게 놓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