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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Sep 10. 2024

쇼를 망친 돌고래

쇼를 망친 돌고래 ep.19

도박에 중독된 아빠와 술에 절여져 미쳐가는 엄마.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평생 발버둥 쳤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나는 분명, 조금씩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안타깝게도 내 오빠는 달아날 힘이 없었다. 제 부모의 치명적인 결함들을 온몸으로 흡수하더니, 사람들 입방아에 흔히 오르내리는 '패륜아'가 되어버렸다. 꼭 쇼를 망친 돌고래 같달까. 좁은 공간에 갇혀 셀 수 없이 잦은 채찍질을 감내하더니 이 사달을 내고야 말았다. 유난히 순하고 똑똑하던 돌고래가 폭주하니, 그의 어미도 어쩔 도리가 없는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나란 아이는 속내를 드러내는 데 스스럼이 없다. 특히 가정불화에 있어서만큼은 더욱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부모를 잘못 만난 것과 형제 복이 없는 것. 어느 하나 내 탓인 게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이 이야기의 막을 여는 데는 고민이 필요했다. 나답지 않은 망설임이었다.


내 인생에서 오빠를 도려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패륜을 이해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었으면 좋겠다고, 알아서 죽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죽이고 싶다 생각했지만 모든 걸 잊고 자유롭게 유영하길 바랬다. 미웠고, 측은했고, 저주했고, 초해했다. 그렇게 내 마음의 박동이 수없이 요동치는 동안에도 변치 않는 게 하나 있었다. 오빠도 붕괴된 우리 가정의 피해자였다는 것. 그 사실이 자꾸만 나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지독하게 보수적인 어른들의 기대감에 내내 짓눌려 살아왔다는 걸, 집안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이라는 죄로 체득한 거라곤 참는 법 밖에 없었다는 걸, 그 모든 압박감을 동생과 나누고 싶지 않아 했다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자랐다. 아마 내게 달아날 힘이 남아있었던 건, 사방에서 내리 꽂히는 수많은 채찍질의 대부분이 오빠를 향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써야만 했다. 이 글은 쓰여야만 했다. 부모가 점찍어준 남자와 결혼했다가 도박 빚에 시달리게 된 엄마보다, 조여 오는 숨통을 견디지 못하고 날뛰는 오빠보다, 그 모든 꼴을 맨 정신에 감당하고 살아온 내가 제일 불쌍하니까. 나에게는 술이라는 수면제도, 게임이라는 도피처도, 범죄라는 일탈도 허락되지 않았다. 매일 밤, 가족에게서 도망칠 날만을 고대하며 버텼다.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가장 딱히 여기는 게 맞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말한다.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랬겠어."

"엄마도 부모가 처음이니까.."

"민정씨 오빠 너무 안쓰럽다...“

"닌 그래도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했잖아."

"민정이는 워낙 알아서 잘하잖아."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이 내뱉는 모든 말들이 내게 2차 가해를 범하고 있다 일러주고 싶다. 이런 식의 위로라면 정중하지도 않게 사양한다. 엄마가 힘든 삶을 살아온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모든 건 그녀가 선택한 것의 결과다. 결혼도, 출산도, 이혼도, 양육도. 나는 엄마의 불행에 책임이 없다. '처음'이라는 말로 모든 걸 이해받기엔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지대하다. 엄마는 처음이었을지언정 누군가의 자식으론 살아봤으니, 본인이 겪었던 설움을 악습 시키진 말아야 했다. 물론 내가 좋은 남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 운은 시도 때도 없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빗방울처럼 흔히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다. 내 몸에 흐르는 김해김가의 피를 모조리 비워내겠다는 심정으로 살았다. 고작 '운빨'이라는 두 글자에 담을 수 없는 몸부림이 서려있다. 그러니 아무도 내게 이런 어쭙잖은 말들을 건넬 자격이 없다.




이제 쇼는 끝났다. 온 집안이 평생 공들여 온 장손이라는 작품이 산산조각 났음에도 제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한 여자와, 수족관을 부시고 탈출했음에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불쌍한 돌고래만 남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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