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를 망친 돌고래 ep.17
다행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도 우습지만 내 오빠는 그렇게 제대로 된 근로자가 되었다. 무슨 일 이랬더라. 들뜬 목소리로 조잘대는 엄마의 이야기를 한참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나지 않는다'는 표현은 의도치 않게 기억을 상실한 것처럼 느껴지니 기억'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그의 취업 소식은 내 머릿속의 아주 작은 한 켠조차 자리 잡을 가치가 없다.
태생적으로 욕심이 많지 않은 덕인지 돈을 벌기 시작한 후 각종 행사를 빼먹지 않았다. 엄마의 생일에는 꽤 값이 나가는 신발을, 명절에는 배가 터지도록 몇 끼를 구워내야 겨우 소진할 수 있을 정도의 소고기를 보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엄마의 입꼬리는 하염없이 치솟았다. 내게 전화해 "정아, 오빠야가 소고기를 40만 원어치나 보냈다. 아무리 먹어도 줄지가 않네~ 이제 진짜 정신차맀는갑다"며 으스댔다. 폴리텍 대학을 가겠다 했단다. 막상 현장에 투입되고 나니, 좀 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고.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수업을 들을 테니 첫 학기 등록금만 내달라 했단다. 부모로 인해 학업의 꿈을 펼치지 못했던 엄마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말에 유난히 약했다. 사기 치다 끌려간 놈의 말을 어떻게 믿냐며 의심하는 건 이번에도 나뿐이었다.
결혼식 이후, 나는 오빠를 보지 않았다. 딱히 봐야 할 이유도 없었다. 엄마가 이따금씩 전해주는 소식만으로 생사 여부를 확인할 뿐이다. 일도 학업도 열심히 해내고 있다고. 요즘은 사고도 치지 않는다고. 애초에 당연했어야 할 시답잖은 얘기들을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내뱉는다. 3년도 넘게 들었지만 나는 그 말을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다. 내 두 눈으로 매일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퇴근 후 학교로 달려가 배움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쭉 의심할 셈이다. 아니, 아마 cctv를 설치해 그의 온종일을 감시한다고 해도 조작된 영상인 게 틀림없다며 카메라를 깨부술지도 모르겠다.
기특함에 몸 둘 바 모르는 엄마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던 시절이 있다. 생각머리가 박여있는 인간이라면 저 나이 먹고 제 앞가림 하나 스스로 해내는 게 당연하지.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리도 방방 뛰는지. 가끔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말을 결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다행이네"라는 네 글자가 내 주둥이에서 나오는 순간 오빠를 기특해하는 엄마의 터무니없는 마음에 동의해 주는 것 같아서. 그러는 와중에도 둘의 사이가 멀어지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오빠는 엄마의 아들이니까. 저렇게 자식을 감싸고도는 건 부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그는 엄마가 낳은 또 하나의 인간일 뿐, 내게는 형제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니 이해할 필요도, 잘 지낼 이유도 없다.
그런 나를 엄마는 끊임없이 설득하려 들었다. 오빠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가끔 험한 말을 뱉을 때면 "어디 버릇없이 오빠에 대해 그렇게 말하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을 운운하며 '엄마 없으면 남는 건 너희 둘 뿐'이라고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해대는 날도 적지 않다. 그럴 때면 속으로 외쳤다. '엄마가 죽는 순간 난 외동딸'이 되는 거라고. 비로소 내 속의 쉼 없는 들끓음이 종식되는 거라고. 어쩌면 내가, 조금은 기다리고 있는 날일지도 모른다고. 그게 내 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