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방황

그 끝에서 마주한 한 줄기의 빛

by 김동한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나의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의 시기의 키워드는 혼란과 방황으로 집약된다. 장래 희망과 관련해서 정말 혼란과 방황이 많았다. 내가 뭘 잘하는지 몰랐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경험이 많이 없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뜻밖의 길을 발견했고, 지금은 AI 개발자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뼛속까지 문과였던 내가, 컴퓨터 공학에 발을 들이게 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중학생 내내 장래희망이 '외교관'이었다. 이 열정에 불을 집히게 된 계기는,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높은 수준으로 구사하는 점이 굉장히 부럽고 신기했다. 그래서, 나도 그들처럼 다른 언어를 멋있게 구사하고자, 외국어에 관심이 정말로 많았다. 게다가,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웠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외교관이 되어서 다양한 언어들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며, 나의 세상을 넓히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한 번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갑자기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인권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인권 변호사 출신인 경우가 많아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후 법 동아리도 들어서, 여러 번의 모의재판도 진행했었다. 2학년 말에는 학교 방송에서 모의재판을 한 적이 있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모의재판을 2년 정도 지속하던 중 '변호사는 내 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토론을 잘 못했다. 소위 말하는 말빨이 좋지 못했다. 다음으로, '인권 변호사를 하게 되면 수입이 적을 텐데, 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나?'라는 질문에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변호사의 꿈도 가슴 한편에 묻어두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고3 때부터 정말 폭풍이 몰아쳤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라는 생각이 정말 끊임없이 들었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로 고3 1월에 프랑스에 여행을 오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유학'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유학을 하면 뭔가 이 혼란을 해결해 줄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유학'이라는 것을 정말 막연하게 꿈만 꾸었다. 일단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유학을 왔지만 혼란을 해결해 주진 못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올해 겨우,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니 말이다.


고3 때, 장래 희망을 적을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경제학과와 철학과를 지망을 했었다. 경제학과는 많은 문과생들이 진학을 하기 때문에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철학과는 대학에 들어가서 철학을 배우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한국에서는, 수능점수에 맞춰서 '무역학과'에 가게 되었다. 해보니,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군대에서 본격적으로 장래희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군대에서 장래와 관련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스포츠 에이전트였다. 스포츠를 많이 좋아했었고, 그중에서도 축구를 정말 광적으로 좋아했었다. 실제 축구 경기들을 보면서 전술 분석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 스포츠를 주 업으로 삼으면,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높은 현실의 벽을 체감했다. 인맥이 없으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이 꿈도 다시 접게 되었다. 그래서, 고3 때 생각했던 경제학과로 배를 돌리게 되었다.



프랑스로 유학을 온 후, 언어가 잘 안 되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물론 프랑스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서, B2는 8개월 정도만에 땄다. 그 시간에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가 설정한 목표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경제학과를 지망하는 학생인데, 경제학 책은 많이 읽지는 않았고 경제 동향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철학책을 더 좋아하고 열심히 탐독했었다.


이듬해, 건축에 눈을 뜨게 된다. 추상적인 생각들을 건물이라는 하나의 실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메리트가 있었다. 또한, 프랑스에 유명한 건축 학교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건축에 대한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저변을 넓히고자 건축 책을 사서 읽어보게 되었다. 막상 건축 책을 읽어보니 관심이 빨리 식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42'라는 학교를 발견하게 된다. 학비가 무료였던 점이 큰 메리트였고 궁금해서 더 깊게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교였던 것이다. 사실 필자는 '프로그래머 (개발자)'의 꿈을 꾸지도 않았고,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개발자인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서 그런지 그 직업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아버지께 배우면, 다른 친구들에 비해선 빠르게 배우며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 점이 유학생인 나로서는 굉장히 큰 장점이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 덕분에 그래도 다른 학생들과 비슷하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개발자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 나갔다. 그래서 코딩을 시작한 시점이 길지는 않다. 학교 입학시험이 어떻게 보면, 내 인생 처음 제대로 된 코딩을 했던 시점이기 때문이다. 학교 시험을 치는 동안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다. 1주 차에 쉘 명령어와 관련된 과제를 하게 되는데, 재시도를 4번씩이나 하게 된다. 그때 내가 적성에 맞지 않는 건가 싶은 생각이 매분 매초마다 들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본격적으로 C언어와 관련된 과제를 진행하면서, 재미를 차차 붙여가게 된다.


이 시기에 아버지에게, 값진 조언들을 얻게 된다. C언어와 관련된 조언들 보다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지에 관련된 조언들이었다. 그 조언들을 적용을 점차 해 나가면서, 코딩에 재미를 느끼고, 어쩌면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좋은 결과로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꿀 조언을 들으며 코딩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AI개발자를 꿈꾸며, 열심히 코딩을 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재미있는 변화이다. 고등학교 친구들도, 지금 전공을 이야기하면 정말 놀란다. 이래서 인생을 사는 것이 재미있나 보다. 가끔씩 아예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인생이 흐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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