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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할머니는 어땠어?

40년생 주 여사, 첫번째 이야기

by 남기자




1940년 생 주 여사의 이야기입니다. 경상북도에서 태어난 주 여사는 열아홉에 결혼해 스무 살에 아들을 얻고 남편을 잃습니다. 10년 뒤 아들과 시어머니, 시누이를 데리고 무일푼으로 서울로 상경한 주 여사는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글은 주 여사의 말투를 그대로 옮겨 썼습니다. 할머니가 마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할매


내는 우리 할매가 참 좋았어. 우리가 할매를 생각하믄 내가 생각나는 게 하나 있지. 들려주까?


느그들도 애미한테 야단맞을 때믄 내 품으로 오르르 띠 왔던 거 기억나나.


그거처럼 우리도 어매가 오줌 쌌다고 싸리비를 들고 우리를 혼낼라카믄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마당을 뛰어 댕겼지. 그러다가 할매가 보이면 할매 치마폭으로 쏙 들카곤 했지.


어매가 싸리 비를 들고 "나온나! 나온나! 누가 쌌노" 이라믄 겁이나가지고 쌀만한 사람 몇이 저리 뛰고 이리 뛰고 했제. 그라믄 할매가 이래.

치매를 치치 들고 "이리 온나, 이리 온나, 애미는 어릴 때 오줌 안 쌌다나" 이라믄 어매가 그 근저를 못 오지.


지금 생각해 보믄 할매 치마 속에 이도 많았을텐 데. 그 더러븐 치마폭이 뭐 좋다고 그 속에 숨어가꼬 이리 땡기고 저리 땡기고. 우리끼리 그 안에서 웃고 자빠지고 그랬는지.


또 겨울이면 아랫목에 할매가 넣어놓은 고구마나 감자를 받아먹고는 했었는데, 느그들도 기억나나.


느그 열 몇 살 땐가. 니들 어멈이 살찐다고 간식 주지 말라카는데,

조그마한 것들이 하도 내를 붙잡고 배고프다도 성화를 하니 뭔 수가 있나.


감자전도 하나지지고, 부칭개를 몇 개 머글만큼 지졌더니, 어멈이랑 아범이랑 그날따라 또 왜그리 빨리 들어오는지.


그 뜨거운 걸 호호 불며 들고 먹다가, 고만 이불 속에 숨겨가지고, 우리 너이서 모른척하고 낄낄 댔던 거 말이다. 입에는 전에서 나온 기름도 그득 묻어가지고 말이지.


느그들 어릴 때 아범한테 혼날 때믄 내 뒤에 숨어 가꼬 내를 이를 돌리고 저리 돌리고.


참으로 웃기기도 허지. 예나 지금이나, 할매 품에 숨으면 부모가 못 혼낸다는 걸 아는 거지.


인제는 니들이 다 커서 뭐 내 품에 숨을 일도 잘 하지 않지만, 어릴 때는 내나, 니들이나 그저 암 것도 아닌 치마폭이 뭐 의지가 된다고, 그 속에 그리 숨었는지 싶다.


아가 니 아무리 다 커도 말이제. 아무헌테도 말 못할 일이 있거든 내 한테 해라이. 이 할매는 다 이해 허니께. 알제? 내는 항상 니 편이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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