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희 Oct 31. 2021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매클렌란 3세, 도른 공저

본래 고대로부터 기술이라는 응용적 산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대 받아 왔다. 과학이 일지감치 존재한 서양에서도 기초적인 것을 중시하는 풍조는 아주 오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기초적인 것을 매우 중시했는데 응용적인 것은 그 이면에 기초적 원리가 숨에 있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을 떼어서 얘기할 수 없을지라도 이러한 연결 고리는 근대 과학이 성립되고도 한참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사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기초과학이 응용으로 쓰인 첫 사례는 사실상 19세기 말에 전자기학이 응용되고부터였다. 전자기학에서 얘기하는 전자기파의 응용은 오늘날 문명 세계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 이전에 과학과 기술이 협력하거나 그러한 사례를 보인 적은 없었다. 그리스, 로마 또는 중국의 뛰어난 건축술은 장인들의 경험에 의한 작품이었고 자연의 힘을 이용한 수력이나 풍력 기관은 고래로부터 근대까지 있어 왔지만 물리학의 원리로부터 파생된 기술이 아니다. 17세기의 산업혁명의 총아로서 증기기관 또한 공학적 산물이지 물리학적으로 법칙이 밝혀지고 제작된 기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물리학적으로 밝혀진 사례이다.


이 책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는 세계사를 과학과 기술로 조망하였다. 2백만 년 전의 인류의 탄생부터 오늘날의 과학 기술까지 다루므로 방대하기는 하나 기술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연대는 불과 2만 년 전쯤의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관개 수로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프로젝트는 세계 문명의 발상지에서 모두 시작되었다. 그만한 기술이 뒷받침되었다는 얘기이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필요 없었던 그리스라서 과학이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일성적 관찰과 평범한 경험과 늘 일치하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립되었고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제도권 하에 들어오면서 번성한다.  물론 고대 기술과 과학은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과학은 도시 문명의 삶의 일부였던 반면에 기술은 고대 세계의 어디에도 존재했다.


중세 중반의 유럽의 농업혁명은 도시화를 촉진시키고 인구 증가를 낳았으며 군사 기술적 혁신 또한 이루어져 봉건제가 영위되면서 유럽의 팽창을 야기했다. 즉, 혁명은 농산물의 잉여 생산을 야기하고 군사를 담당한 기사를 지탱해 왔으나 기사 수의 증가로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여 팽창의 전초를 다진다. 기술적으로 노동력을 대신하는 수차 등이 등장하여 노예제가 쇠퇴하기에 이르고 새로운 무기로 인한 군사혁명은 봉건주에서 왕국으로의 전환을 재촉하여 국가 간 경쟁을 야기하고 기술 개발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15세기 이후 국가 간 경쟁은 식민지 정복으로 이어지고 부는 축적되는 발전을 보였으나 이 시기에 과학의 역할은 없었다. 그러나 이즈음에 발달한 새로운 지리학은 앞으로 있을 과학혁명의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즈음 유행한 신비주의의 영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신비주의자들은 자연에 수학적인 초월성의 신적 질서가 있다고 믿고 인간이 이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갈릴레이, 데카르트를 거쳐 뉴턴이라는 거인이 근대 과학혁명의 깃발을 꽂았다. 그의 지상과 천상의 통합은 가뜩이나 빈사 상태에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체계를 매장시켜 버렸다. 새로운 질서 속에서의 과학적 탄생은 과학뿐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인문학에도 깊은 획을 남겼다. 뉴턴주의는 계몽주의의 절정을 의미했고 급기야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자연에 대한 순수한 탐구 정신은 뉴턴이 계승하였고 19세기의 과학 혁신뿐만이 아니라 20세기 과학에서도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해 왔다. 20세기에 이루어진 다양한 분야에서의 수많은 이론적 혁신은 새로운 세계관의 정립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제 과학의 권위는 기초적인 이론을 넘어서 사회에 미치는 실용적인 것에서 더욱더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그 바탕에 순수과학의 지적 전통이 있고 우리에게 지적인 문화를 가져다주는 핵심 요체 주의 하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다른 대목은 왜 서양에서 과학이 융성했고 왜 다른 지역에서는 놓쳤냐는 가에 대한 대답이다. 예를 들어 왜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다. 유럽은 과학혁명 이전에 중국보다 훨씬 문명으로서 뒤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중국은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질문 자체가 유럽 중심의 사고이고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뭐 한자어가 복잡해서라고도 하고 논리적이고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묵가와 법가 사상이 한 왕조 때부터 아예 배척되었고 유교와 도교를 중시하는 사회가 과학을 멀리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과학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중국에는 있었고 아예 기술만 존재했던 인도와 비교는 된다. 역사를 알고 나서 이미 일어난 역사에 대해 가정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접근 방법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할 수도 있다. 다만 고대 그리스의 과학하는 정신을 고려 대상에서 빼버린다면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