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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Nov 28. 2021

정신의 발견

서구 사유의 탄생, 브루노 스넬 지음

인간의 생각은 역사적으로 진화해 왔다. 물론 한 개인을 놓고 볼 때도 그렇다. 개체는 성장하면서 배움으로 생각의 폭이 넓혀진다. 개체의 생각이 모여지며 시대를 형성하므로 생각은 역사적으로도 진화해 왔을 것이다. 서양에서 생각의 발전은 고대 그리스에서의 언어 변천사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역사적 기록이 분명하게 남아있기도 하거니와 기원전 8세기에서 4세기에 걸친 사오백 년의 긴 시간 동안 바뀌는 문장들 속에서 생각이 어떻게 변하여 왔는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적확하게 파헤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호메로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은 분명히 맞다. 우리는 분명히 기록을 가지고 있으니까.


호메로스의 대단한 서사적 저작은 서정시의 성립을 거쳐 비극이 발생하고 철학으로 이행한다. 이 과정은 약 4백 년에 걸쳐 일어났다. 철학의 발전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보면 자연과학의 시작, 덕에 대한 권고를 거쳐 인간 과학의 태동 및 인간 및 자연과학의 학문화를 거친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서사시나 서정시 또는 비극 작품이 철학과 무슨 관련이 있겠냐 싶지만, 사람의 생각이 본래부터 과학적 추론 능력을 갖춘 뇌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 또한 예술과 철학 또는 과학을 완전히 분리할 만큼 생각이 양립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각각의 이러한 생각들이 처음부터 같이 시작된 것이 아니고 초기의 기본적인 생각이 진화하여 고도의 추론 능력이 길러지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를 보면 명확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에서만 보는 특징일 것이다. 


생각의 진화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호메로스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 책 <정신의 발견>은 호메로스가 인간을 어떻게 표현했는가로 시작한다. 웅장하고 섬세하고 대단하기 짝이 없는 서사시인 호메로스 이야기 시절의 언어는 후대와 매우 다르다. 그리스에서 보편성을 끌어낸 명석판명한 사고의 형성기인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언어와 호메로스의 언어는 매우 달랐다. 당시의 언어는 총체성이 없었다. 예를 들어 ‘보다’라는 동사를 우리는 두루 다양하게 쓰지만, 호메로스 시대에는 보는 것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보다’와 같은 포괄적인 동사 대신에 보는 것을 특정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동사가 쓰였다. 즉 단어가 포괄성을 띠지 않아 객관적 사태만을 포함하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는 단어도 당시에는 튀모스, 누우스, 프쉬케라는 세 가지 다른 용어로 쓰였다. 물론 이들 셋이 우리가 현재 쓰는 영혼을 뜻하지 않고 영혼의 기관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정신을 표현하는 단어로서 튀모스는 어떤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정신적 충동의 기관쯤으로 해석 가능하며, 누우스는 무언가를 보고 표상하는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시케는 인간 생명을 유지하는 호흡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이토스는 처음으로 프쉬케를 살아있는 인간의 영혼으로 규정한다. 그의 시대가 기원전 5세기이므로 프쉬케가 영혼으로 정착하기까지 3백 년이 걸렸던 셈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제시한 매우 중요한 단어를 하나 더 제시해 보자. 그는 로고스와 우주 속에 생명을 간직하는 만물의 본질적 특성으로 대립과 긴장을 내세웠다. 이때 로고스는 공통으로 만물을 관통하여 두루 편재하는 것이다. 이른바 포괄적 단어는 기원전 5세기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호메로스의 언어는 원시적이다. 하지만 유럽 사고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비록 추상적이긴 하지만 후대 사상가들의 사유가 이로부터 나오지 않았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호메로스의 이야기 중심은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오뒷세우스의 운명에 근거한다. 일리아드는 모든 국면 전환이 신에 의해 규정되고 오뒷세이아에서 신은 지속적 동반자의 역할을 하지만, 인간의 자기 결정권이 없다는 데서 같다. 모든 결정은 신에 의해서 구현되고 인간 스스로 자기 결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 당시 종교관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바, 제목이 암시하듯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기술하여 최고 신인 제우스 휘하에 수많은 신들의 선과 악을 그려 이들 세계의 질서와 정의를 묘사하였다. 세계에 적대적인 다양한 원리가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 신통기는 호메로스 이야기와 함께 후대에 전수되었다. 인간의 지각, 사고, 욕구의 발단은 신들에 기인하며 적어도 호메로스 시대에 보편성은 인간 모두가 신들에 구속되어 있다는 것으로 후일 이것이 깨짐으로 서구 문화의 발전이 촉발되었다. 인간 자신의 자각은 비극이 만들어진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생성된다. BC5세기의 인간들은 자유를 의식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 바야흐로 신성에서 정의, 선, 덕이나 인간 행위의 규범을 따지게 된 것이다. 좀 더 들여다보자.


서사시의 시대는 가고 서정시의 시대에 이르러 고대 그리스는 비로소 인간 개성의 자각이 드러난다. 서정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전에는 없던 시인의 개성이 두드러져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시인에게만 개성이 나타나는 게 아니고 당시의 종교 사상가, 철학자, 예술가, 입법권자 등 다양한 군상에게 나타났을 것이다. 서정시는 BC7세기 초반에서 5세기까지 보이는데, 사포의 시 세계를 엿봄으로 개성이 어떻게 밖으로 표출되는지 알아보자. 사포의 시에는 개인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어 호메로스에는 없던 개인의 성취가 나타난다. 비슷한 시기의 핀다로스의 서정시는 신에 관한 찬가로서 개인감정이 드러나지 않으나 서사시와는 다른 변화의 측면에서는 이들과 일맥상통한다. 핀다로스는 신적인 것을 그때그때 특정의 사태를 일으키는 원리로 규정하지 않고 만물을 관통하는 대립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여 기술한다. 이는 서정 시인들이 영혼을 신체 기관과 구별하여 찾는 것과 유사하다. 즉, 서정시가 개인의 감정을 호소하든 신을 찬양하든 호메로스의 서사시와는 차별성이 있다. 그런데 핀다로스가 테베에서 활동하는 동안 비극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아티카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좀 더 깊은 개인의 의식적 행위 영역은 비극 시대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비극에서 신화는 보편적 상황이 되어 버린다. 서정시에서 신화가 승리나 혼인 또는 제의 축제에 따라 시공간적으로 규정된 것에서 시공간에 균질성을 추구하므로 신화는 더는 실재가 아닐 뿐만이 아니라 각색할 수 있게 되었다. 비극 작가의 인식 행위가 덧씌워진 것이다. 사건 동기를 신이 아니라 인간 행동에서 찾으므로 사태는 인간의 자기의식에 따라 결정된다. 에우리피데스나 소포클레스는 신화적 인물을 실재로 여기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현실은 인간 자신의 정신에 방향 추를 설정하였다. 결과는 인간 자신의 욕망, 지식 및 영혼의 활동에서 빚어지는 갈등으로 드러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나 안티고네 등은 확고한 이념에 의해 행위를 하는 인간으로 자신 주위와 의식적으로 대립하며 결국은 자기 파멸을 맞이한다. 비극의 목표는 인간 자신의 행위였다. 이것이 인간 인식의 문제로 넘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철학이 비로소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 이렇게 요약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서사시는 정신의 발전을 위한 역사를 준비했다. 신들의 계보와 우주의 발생을 얘기한 문학은 사물의 연원, 우주의 근본을 묻는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으로 변천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탈 신화화하면서 자연의 근본을 묻는 행위는 신적 지식을 떠나 인간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했기에 서사시 이후의 서정시 시대에 인간 정신에 관해 물음이 시작되므로 유래를 찾을 수 있겠다. 물론 이로부터 인간 행위와 선의 철학적 탐구가 싹트게도 되었을 것이다. 에우리피데스가 죽음으로 비극의 시대는 끝을 맺고 몇 희극을 기점으로 축제 문학은 사라진다. 산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산문은 논리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신화적 사유가 상징과 비유의 사유라면 논리적 사유는 진리 탐구이므로 방법론적으로 정밀하고 모순율에 맞춰 객관적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러한 결과물을 시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에서의 온갖 비유, 직유나 은유 그리고 유추 대부분은 신화적 형상을 그리기에 알맞고, 신화이기에 직접적으로 이해되는 생생한 언어이다. 그러나 논리에서는 다르다. 논리는 철학과 자연과학을 칭하는데 유독 자연과학이 오직 그리스에서만 독자적인 과학 개념이 형성되었다. 과학 개념 형성에 그리스 언어가 큰 역할을 하였다. (저자는 문헌학자이므로 오직 언어가 과학 개념 형성에 미친 영향을 기술한다. 물론 그리스에서 과학이 시작된 연유는 다른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스 언어는 정관사를 가지고 있다. 만약 정관사가 없었다면 논리적 개념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정관사가 없었다면 보편 특정이 불가능했을 뿐만이 아니라 형용사나 동사의 개념 고정 또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칭 정관사는 자연스럽게 보편 정관사로 발전하였으므로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과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과학 개념 형성은 그리스 연어 안에 있는 다양한 가능 형식 가운데 선택된 특정의 결과이다. 저자는 과학적 개념 형성의 연결 고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어만 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근대 과학의 성립을 접하다 보면 그 연원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왜 동양이 아니라 서양에서 독점적으로 과학이 창출되었을까? 과학의 창출은 참신한 생각의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쌍방 간 생각의 차이가 무엇인가? 사람은 다 같이 생각은 하지만 과학적 사고는 따로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서양이 근대 과학을 창출하게 만든 무엇일 있지 않을까? 연원을 따지다 보면 답이 주어질 수가 있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은 분명히 같은 식의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동양이 가지고 있지 못한 서양식 어떤 생각이 과학 창출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이 책은 문헌학자인 저자가 철학과 자연과학이 어떻게 도래하였는지를 그리스 언어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산문이 어떻게 도래하였는지가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 언어 변천을 통한 생각의 발전사 쯤으로 해석하면 좋을 듯 싶다. 또 한가지 덧붙일 것은 자연과학의 도래에 관한 설명이 부족하다. 물론 서사시, 서정시를 거쳐 비극의 시대 마지막으로 산문의 시대를 거치는 그리스는 수백 년간에 걸쳐 운문에서 산문으로의 이행을 하였다. 그러나 산문으로서 논리적 이론인 철학의 도래를 그런대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자연과학이 창출된 것은 이유가 어쩐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중국에서도 서정시는 존재해 왔고 시가 인간 자신의 의식을 담은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발전해서 자연과학이 된 것은 아니다. 다른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저자는 문헌학자로서 오직 언어적 관점에서만 이를 다루었다는 얘기를 본문 가운데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그리스의 상고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까지 약 8백 년간의 기록을 모두 정리하여 생각이 어떻게 발전을 이루었는가를 보여준다. 문헌학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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