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년, 근대의 탄생
루크레티우스는 기원전 1세기 로마공화정 시절(술라와 카이사르가 활동하였던 시기)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책으로 남겼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사물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저작인데 그는 원자론자였다. 그러니까 그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사상가인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이를 살아가는 데로 적용한 에피쿠로스의 추종자였다. 흔히들 원자론자라고 하면 물질의 기본 단위를 역사상 처음으로 주장한 사상가들이라고 하지만, 물질을 이루는 구성단위에 관한 기본 생각은 오늘날 물리학자들이 밝혀낸 것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원자론이 지향하는 것은 과학 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생각에 가깝다. 무신론도 종교라면 그렇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물질적 원자론에 기초하여 세상이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니 신의 개념이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포가 없는 현실적인 마음의 평안함이 곧 추구해야 할 쾌락으로 생각했다.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원자론적 관점에서의 사물을 얘기하는 장편 서사시로서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어 우주는 신의 도움 없이 움직이며 사후세계는 없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창조, 심판, 부활 등을 믿지 않아 기독교가 흥해지는 기원후에는 에피쿠로스주의는 이단으로 몰렸다. 당연히 루크레티우스의 책은 금서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은 14세기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15세기 르네상스가 시작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 책은 루크레티우스의 책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며 이 책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를 추적한다. 역설적이지만 저자는 이 책의 발굴이 르네상스의 시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1417년 겨울, 30대 후반의 위대한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는 남부 독일의 한 수도원의 서가에서 옛 필사본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다. 이 발견으로 그 이후 세계사의 진행이 바뀌게 된다. 이 책의 필사가 근대의 탄생을 확인하는 발자취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포조의 이 책 발견의 전후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르네상스의 태동과 전개를 설득력이 있게 규명한다.
포조는 르네상스 당대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필사가이자 고전의 라틴어 번역자였다. 원래 포조는 당시 교황의 대비서로서 임무를 수행하였고 섬기던 교황이 폐위되자 잊힌 오래된 책을 찾는 일에 몰두하였다. 당시에 오래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책들을 수도원 등 구석진 곳에서 찾아내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포조가 극적으로 찾아낸 필사본은 천 년 이상 잊혀 있던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였다. 원자론이 중세 천 년 동안 금지되었던 이단의 사상으로서 강제된 망각에서 해방하는 임무를 포조가 맡은 셈이었다. 필사본을 만들어 세상에 유포된 책은 이후 세계사의 진행을 바꾸게 되었다. 가톨릭교회는 재발견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침묵시키지는 못했다. 기독교의 교리에 의해서 인간의 사상과 자유가 속박당했던 중세의 암흑기를 마감하고 르네상스 태동의 계기가 되었다. 책의 내용은 예술에 스며들어 보티첼리와 다 빈치에게 영감을 주었다. 마키아벨리, 몽테뉴 등은 이 책을 심취한 대표적 인물이다. 더 나아가 책은 갈릴레오, 프로이트, 다윈, 아인슈타인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고, 토머스 제퍼슨의 미국 독립선언서에서도 그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책이 필사되어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르네상스는 시작된 것이나 진배없다. 가히 근대의 탄생이 루크레티우스로부터라고 할 만큼 그의 책은 저돌적이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체였다. 저자가 그렇게 주장할 근거는 충분하다. 역사적으로 얘기하나 저자는 사회상이나 당시의 상황에 허구를 가미하여 재미가 있다. 물론 그즈음에 알려진 많은 고서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플라톤의 모든 사상이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을 일깨운 것이 주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될 저작인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필사되고 전수되어 비록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이 읽고 그 사상을 흡수하게 되었을지라도 기독교 가톨릭 권위에 대항하는 책이 바로 이 책뿐임을 볼 때 저자의 주장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책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