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인식론은 철학의 중요한 한 분야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주제에 관해 알고 있는데 그중에 믿음으로 알고 있는 것이 매우 많다. 믿음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참된 지식이 아니다. 믿음은 그것이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믿음이 참일지라도 대부분은 지식에 속하지는 않는다. 알고 있는 것의 난이도와 이해의 정도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난도가 높은 지식 가운데 참이 아닌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지식이 참인지부터가 화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있다면 참된 지식을 걸러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즉 어떻게 지식을 솎아낼 수 있는지 중요하다.
인식론의 시작은 파르메니데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지식과 의견을 구분하였다. 지식은 신뢰할 만한 진리이고 의견은 신뢰하지 못하는 어떤 앎이다. 그에 의하면 존재는 진리로서 지식이고 감각으로 지각되는 세상의 변화는 의견이다. 데모크리토스도 원자론을 바탕으로 원자와 텅 빈 공간을 실재로, 감각적 지각에 의한 표상을 현상으로 구분하였다. 실재는 진리로서 지식이고 현상은 의견인 셈이다. 물론 객관적 진리는 없다고 주장한 소피스트들에게 이러한 구분은 필요가 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본질적인 지식은 존재하고 이를 세밀히 조사하고 명료화하면 객관적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이분 체계와 소크라테스의 참된 지식의 존재와 습득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플라톤은 그의 초·중기 대화편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우티프론, 메논, 카르미데스 및 라케스에서 경건, 덕, 겸손, 용기 등을 주제로 대화자와 문답을 통해 대화자가 만족스러운 정의를 내리지 못하면서 지식을 정당화시키는 데 실패한다.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그에 더해져 지식의 본질 추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하고 있다. 후기 저작인 테아이테토스는 지식이 무엇인지 화두로 삼는데, 테아이테토스는 자신이 내린 지식에 대한 정의를 소크라테스가 모두 반박하자 결국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 이처럼 참된 지식은 얻기 어려우며 방법도 불명확하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의 국가에서 참된 지식은 존재하며 이를 이데아라고 명명하며 얻는 방법까지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지식은 추론적 사고를 요구하는 수학과 이해를 요구하는 이데아의 두 가지가 있다. 수학과 이데아는 둘 다 영원하고 불변한 공통점이 있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상정한 것은 실지로 그것이 존재한다는 주장과 함께 참된 지식을 추구하는 목표물로서 의의가 있다. 참된 지식을 알기 위해서 감각에 의한 지각이나 단순 의견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참된 지식을 아는 방법은 오직 이성에 근거한 것뿐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한 개념적 지식을 참된 지식으로 보았으므로 이성을 통하여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향하여 이데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수많은 개별자를 파악하여 하나의 이데아로 파악하는 일반화와 이데아를 분류하는 특수화 과정을 거치며 확실하고 일관된 사유로 천착한다고 생각했다. 즉, 일반화하고 특수화하며 종합하고 분석하여 개념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개념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변증술이라 한다. 변증술은 일단 가정에서 출발하여 가정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가정이 필요 없는 원리를 발견하고 원리에 따라 결론을 내린다. 시작은 다소 의문시되는 전제를 가정으로 채택하여 가정이 모순이면 포기하고 다른 전제를 내세우는 방법을 통해 모순 없는 전제에 도달한다. 이처럼 변증술을 통한 개념적 지식만이 유일하게 참된 지식이다.
이성적 사유로 얻은 지식은 실재이거나 존재하는 대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개념이 지식으로 가치를 가지려면 개념은 실재하는 것과 대응되어야 한다. 만약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실재해야 한다. 즉 이데아는 실재해야 한다. 수학의 명제들이나 진선미의 이데아들은 우리의 지식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으면 지식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개념적 지식은 이데아의 실재성을 전제로 한다. 개념이 곧 실재라는 주장은 지식이 존재 자체라는 의미이다. 변화는 단순한 착각에 불과하다. 감각으로 파악한 세계는 항상 변하는 세계로서 참되지 않다. 참된 존재는 불변이며 영원한 것이므로 개념적 사유만이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유는 사물의 본질적 형상을 인식한다. 형상이 이데아이다.
플라톤은 인식을 네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가장 낮은 단계로서 감각적이되 그나마 불분명하여 추측으로 인한 상, 그림자, 꿈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추측으로 얻은 지식은 그럴듯한 것일 뿐으로 불분명하여 물리적 대상이 왜곡되어 인식된다. 다음 단계로서 뚜렷한 감각적 지각이다. 이 단계는 감각으로 얻은 지식을 표상하여 어떤 물체를 구별할 수 있는 단계이다. 물론 추측보다는 더 신뢰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지식은 개연적으로 확실하지 않다. 언급한 두 단계는 감각에 의한 지각 단계로서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식의 신뢰도는 낮다. 세 번째 단계는 수학적 추상물과 관계하는 추론적 지성의 단계이다. 추상물은 수, 점, 선이나 평면, 삼각형 같은 수학적 기하학적 대상을 일컫는다. 마지막 최고의 단계는 이성의 단계로서 이로부터의 통찰로 이데아의 지식이 얻어진다. 사용되는 방법은 변증술로서 이데아를 파악하기 위해 체계적 통일을 형성한다. 변증법은 가설이 아닌 제일원리에 준거하고 감각에 의존치 않는다.
플라톤의 인식에 대한 고찰은 인식의 정의와 체계 그리고 방법을 담고 있어 전형적인 인식 이론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의 인식론은 후일 이데아를 반대하든, 이데아를 좇든, 아니면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인식 이론을 구성하든, 후대 철학자에게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할 자료가 되었다. 인간 인식을 어떻게 사유하는가에 따라 사상가의 성향이 나타난다. 플라톤이 구상한 인간 인식의 틀을 보면 그가 객관적 관념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