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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Mar 01. 2021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

시학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핵심 사상인 이데아에 대한 반박을 통해 자신의 주된 사상을 구현하였는데 이는 예술 분야에서도 적용된다. 플라톤이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이데아에 발목을 단단히 잡힌 형국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술에 대한 그의 비평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데아 중시의 관점에서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연에 대한 모방일 뿐이었다. 그는 ‘국가’에서 예술가들을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독설을 퍼부었다. 참된 것은 이데아이고 자연은 그것에 대한 모사일 뿐인데,  자연의 모사품으로서 예술은 이데아 모사의 모사일 뿐이다. 실재에서 두 단계가 떨어진 예술은 참되 지식을 왜곡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은 예술의 인식적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내재적 형상의 개념을 앞세우므로, 예술의 인식적 가치를 인정하였다. 예술가는 자연의 보편성을 직접 경험하여 이를 예술의 형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사는 오히려 자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었다.


모든 예술은 모방이다. 장르는 무엇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목소리와 언어를 사용하면 시나 음악이 될 것이고 형상과 색깔을 수단으로 삼으면 미술, 리듬이면 춤일 것이다. 예술은 인식론적 가치 외에 심리학적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예술은 모방(미메시스)에 대한 본능을 심어 주어 인간 학습이 이루어지게 한다. 어린이는 모방을 통하여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모든 학습 또한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예술 또한 그렇다. 그런데 예술은 미메시스를 통하여 쾌락을 얻는다. 자연을 통해서 미메시스 된 어떤 작품으로부터 자연과 유사함을 발견하여 즐거워하므로 이는 쾌락이다. 현실에서 늘 보아왔던 사물이 그림을 통해 그려질 때, 갑자기 감흥을 받는 경우 등의 쾌락에 속한다.


시문학은 누구를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 비극과 희극을 갈린다. 전자는 질적으로 높은 사람들이 대상이고 후자는 저급한 사람들의 몫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코미디를 수준 높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비극은 수준 높은 무언가가 있다고 보통 생각한다. 그래서 비극은 훌륭한 사람들을 모방하는데 극에는 실제 훌륭한 사람보다 더 훌륭하게 묘사해야 한다. 이는 황금 덩어리를 세공하면 값비싸고 귀한 보석이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이를 일반적으로 예술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바, 예술가는 사실을 모방하되 거기에 아름다움을 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론에 방점을 둔 평론이다. ‘시학’은 시의 제작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하는 시는 서정시, 서사시, 비극, 희극 또는 드라마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식론적 측면을 역사와 비교하여 강조한다. 역사는 오직 특정의 인물과 사건을 다룰 수밖에 없는데 비해 시는 인간의 근본을 다루므로 보편적이다. 역사는 개별적이지만 시는 보편적이므로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며 보편성을 띤다.


비극은 서술 형식 대신에 드라마 형식을 취함으로 관객들은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을 보며 연민과 두려움을 느낀다. 플라톤은 이 감정이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이성의 통제를 약화할 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과도한 열정에 빠뜨리므로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비난하였다. 그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정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관객들은 마음이 씻겨 내리는 경험으로 가지는데 이를 카타르시스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목적이 극단적인 연민과 공포의 감정으로 카타르시스를 일으켜 쾌감을 유발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비극은 파토스적, 에토스적 단순과 복합적 비극의 네 가지가 있다. 단순과 복합적 비극은 단순한 하나의 에피소드를 다룬 것이 단순 비극이고 반전과 깨달음에 의지하는 복합적 플롯이 구성되는 것이 복합적 비극이다. 파토스와 에토스의 의미는 그대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수사학에서 찾아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면 더 좋을 듯싶다. 다만 파토스는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여 설득하는 것쯤으로 하여 관객 중심으로, 에토스는 주인공의 신뢰나 믿을 만한 어떤 카리스마, 즉 비극의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관객을 설득하는 것으로 주인공 중심쯤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듯싶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가운데 역사상 가장 최소한의 수정으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최고의 저작은 시학이다. 시학의 중요 용어 미메시스, 반전, 카타르시스는 오늘날 관련 예술의 창작과 평론에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시학이 비극을 많이 다루었으므로 항간에는 옛날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에 관한 시학 편이 존재할 것이라는 풍문이 있다. 시학 2편은 실제로 역사적으로 찾으려고 노력을 하였었고 이를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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