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
밀레토스 학파가 남긴 자연에 대한 탐구는 기원전 5세기에 더 다양해졌다. 물과 흙을 자연 사물의 본성이라고 주장한 크세노파네스는 물질의 생성과 소멸을 물과 흙의 혼합으로 설명하였다. 밀레토스 전통에서 복수의 근원을 최초로 내세운 그의 사고는 신선하고 이로써 우리가 흔히 자연에서 접하는 가장 많은 물질적 요소 중에 흙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근원에 대한 추상적 사고도 나타났다. 테트락티스를 통해 우주에 대한 앎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수적 비율에 기초해 우주를 이해하고자 한 피타고라스이다. 피타고라스는 자연에 존재하는 궁극적 근원(또는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수라고 주장하였다. 정수 사이의 비율과 음악과의 관계, 음악과 자연의 특별한 관계로부터 수가 실재의 궁극적 본질이라고 믿었다. 근원이 수인만큼 그에게 하나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자연은 다수였다. 수에 관한 생각은 플라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대화편 곳곳에 수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인 것은 틀림이 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이 모든 점에서 변한다는 만물 유전설의 장본인이다. 만물은 로고스에 준거하여 존재한다고 하였다. 로고스는 진리 자체 또는 법칙이나 진리를 표현하는 수단인 언어로 해석될 수 있어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로고스의 진리는 자연이 다양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실제로는 복합적 관계 속에 통합되어 있음을 함의한다. 하나로부터 모든 것이 도출되므로 다수의 사물로 구성된 전체인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양성 이면에 존재하는 통일성을 찾아내야 한다. 통일은 대립적 성질들의 통일이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어귀에서 모든 것은 대립적 성질에, 하나는 통일에 대응된다. 그러므로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대립적 성질들과 그 이면의 통일성 사이의 상호관계를 알아야 한다.
상호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헤라클레이토스가 언급한 활의 시위와 활대의 관계를 보자. 표상적으로 둘은 그저 활을 구성하는 부품일 뿐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둘이 동시에 있어야 활이 제 기능을 가진다. 시위와 활대는 각각 안으로 당기고 바깥으로 밀치는 대립 관계이면서 상호의존적이다. 시위와 활대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긴장 관계에 있다. 둘의 상호 긴장 관계가 균형을 이룰 때 활의 기능이 올바로 작용한다. 즉, 활이 활로서 작동하기 위해서 시위와 활대의 긴장과 투쟁이 이면에서 작용해야 한다. 이처럼 대립자들의 통일성은 긴장 관계의 균형을 의미한다. 로고스란 바로 자연현상들의 다양한 이면에 작용하는 대립과 통일의 복합적 관계를 가리킨다.
자연은 운동과 변화의 과정 안에서 영원하다. 운동은 자연을 구성하는 물질의 규칙적인 상호 변화의 과정이다. 변화는 대립적 성질을 드러내는 사물의 다양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또는 운동)가 정지를 전제로 한다고 명시했다. 사물의 대립적 성질의 다양성은 변화로 나타나고 이면의 통일성은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주는 변화의 과정과 정체성의 유기적 통일체와 같다. 그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라는 아포리즘은 이러한 변화와 정체성의 관계를 매우 잘 말해준다. 강의 본질인 변화는 물의 흐름이고 같은 강은 정체성을 함의한다. 활도 시위와 활대라는 대립자들이 동적 긴장 관계에 있으면서 활로서의 정체성이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처럼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서 하나의 통일적 법칙을 찾으려 했다.
변화를 이론화한 최초의 인물이 불이 자연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것은 밀레토스 학자들의 일원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에 우선적 지위를 부여한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성의 상징으로 자연의 변화와 이면의 통일성을 표현하기에 불이 가장 적합한 요소로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원론의 관점에서 밀레토스 학자들과 궤를 같이하더라도 동적인 관점에서 자연의 근본을 설명하려 한 커다란 차별성이 있다. 불은 말이 의미하는 그대로가 아니라 근원적 에너지쯤으로 해석하는 게 더 타당하다. 에너지로부터 끊임없이 다양한 전개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을 대립적 성질들의 통일 법칙으로 고려할 수 있다. 모든 발전은 대립의 힘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자연의 모든 사건에 대립적 성질 사이의 변화를 위한 투쟁이 필수적이다. 겨울과 여름, 전쟁과 평화, 남자와 여자 등 자연의 모든 대립은 투쟁하는 가운데 조화로운 자연이 형성된다. 그래서 투쟁은 자연을 존속시키는 데 필요하다. 선함은 악함이, 배부름은 배고픔이, 휴식은 피로가 있어야 존재하듯이 상반되는 대립물이 서로 짝을 이뤄 협력한다. 자연과 인간 사회 모두를 생성과 변화를 이론화하여 정립하려 시도한 방법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증법적 발전 이론의 창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