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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Apr 12. 2021

정신현상학

헤겔의 이성

<정신현상학>은 헤겔의 체계인 논리학, 자연철학 및 정신 철학에서의 이성의 역할을 논하기 위하여 입문서라는 표현을 많이 쓰기는 한다. 그래서 정신현상학은 헤겔 사상의 총체적 사유를 담은 저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현상학은 사유의 중추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상학에서도 그의 사유 영역은 매우 방대하여 세계와 그 세계가 드러나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포함한다. 이를 우리는 인간 인식, 인간 역사, 문화라고 표현한다.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의 의미는 매우 광범위하여, 한 개인의 의식과 사리 분별 능력인 이성을 뜻할 뿐만이 아니라 어떤 집단이 공유하는 사유나 행위의 형태를 모두 포함한다. 정신은 의식과 이성, 문화양식으로서 법의 체계, 예술 및 종교 등을 모두 아우른다. 현상학의 현상은 본질이 드러나지 않은 어떤 일이나 사물의 상태를 일컫는다. 그래서 정신현상학은 정신이 드러나는 과정을 설명한 저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헤겔에 의하면 정신이 드러나는 과정은 여러 단계이고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데 정신을 자기실현의 과정으로 사유하고 궁극적으로 자기의 본질이 자유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헤겔은 정신현상학을 다른 표현으로 의식 경험의 학이라고도 표현했다.


우리는 어렸을 때와 비교하여 성장하면서 점점 더 복잡한 상황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정신은 감각적 수준에서, 더 높은 차원의 이성적 활동으로 변한다. 그런데 개인뿐만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것을,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도 뭔가를 배운다. 그러므로 사람의 정신 구현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정도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그리고 역사를 총망라하는 정체성을 가진다. 정신현상학은 이러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저작이다.


밝혔다시피, 정신은 여러 단계로 상향되는데 의식의 단계에서 시작하여, 자기의식 및 이성으로 올라간다. 의식은 사물을 파악하는 단계로서 감각의 확신으로 시작된다. 어떤 물체의 맛, 생김새, 냄새 등 오감을 통하여 들어온 감각이 확실하게 들어온 상황이다. 어떤 것이라고 이해시켜 주지는 않는다. 물체를 감각적으로 확인하여 만들어지는 이러한 앎은 어떤 것이라고 이해시켜 주지는 않아 참모습이 아니다. 감각의 확신성 다음에 오는 지각은 감각보다는 보편적 개념에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되므로 사물의 본모습을 올바로 지각하는 단계이다. 물체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들(또는 특징)이 물체로 지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각의 단계에서 사물의 참모습을 알아낸 것은 아니다. 보편성은 일반적으로 모든 관련 사물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 사물을 지각하는 것을 넘어 이해하는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 오성이 임무를 수행하는 이 단계에서 다양한 성질들의 복합체이자 하나의 통일체인 사물을 비로써 파악한다. 오성의 이러한 통일 과정을 헤겔은 힘(또는 에너지)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므로 헤겔에게 사물의 참모습은 어떤 하나의 힘이다. 힘은 상호관계에서만 존재하므로 특정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이치가 된다. 이러한 세 단계를 총칭하여 의식이라 부른다. 이 단계는 사물을 알아보는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 주관적이다.


의식을 넘어 자기의식의 단계는 대상에 대한 고찰 가운데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의식이다. 즉, 무언가를 의식하는 자기를 의식하는 의식이다. 이때 대상은 또 다른 자기의식이 될 것이다. 자기의식은 사람 안에서의 어떤 것이므로 자기의식의 단계는 사물과 사람의 관계라기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식 가운데 자아는 수많은 대상과 연계되어 있고 동시에 다른 자아와 연관되어 있다. 이처럼 사물을 매개로 타인과 관계하는 자기의식을 헤겔은 생명이라 표현한다. 관계들의 총체인 생명은 욕구 또는 욕망으로 나타난다. 이 욕구 때문에 인류 문명이 발전한다고 헤겔은 주장한다.


헤겔은 인간들의 욕망을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서 설명한다.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들이 투쟁하고 그 욕망은 무한하여 생사를 건 투쟁을 한다. 욕구 충족에서 승리자는 주인이요, 패배자는 노예로서 인정받기 때문에 인간들의 이러한 싸움은 인정 투쟁이다. 그런데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반전을 가진다. 즉,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 아니다. 노예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지경의 주인은 내면적으로 점차로 노예가 되어 가고 노예는 주인을 지배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른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헤겔은 인류 역사가 투쟁의 역사임과 동시에 인간 자아를 실현해 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이제 자기의식의 단계는 이성 그리고 정신의 단계로 넘어간다. 그런데 의식, 자기의식, 이성과 정신 이들 모두는 비록 정신이라는 어휘가 반복될지라도 이는 정신이다. 궁극적으로 절대적 앎을 깨닫기 위해 정신은 감각적 사물을 아는 것으로 시작하여 투쟁하는 인간들과 그들이 살 아기는 현실을 살펴보아야 했다. 이러한 삶 전체를 관통한 후에야 삶 전체가 진리라는 것을 알고 정신의 궤적을 보니 길이 분명하게 보인다. 자유를 실현하기 위하여 작게는 한 인간의 길이고 동시에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헤겔에게 역사와 인간 삶의 내용으로서 세계 사는 이성이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임과 동시에 인간의 자유가 실현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정신의 개체적, 사회적, 역사적 변천을 통한 지향은 위에서 설명한 주인과 노예의 예시를 포함하여 불행한 의식, 아름다운 영혼 등의 정의로서 실존적 형태로 나타날 뿐만이 아니라 동양, 그리스, 계몽, 프랑스혁명 등의 사회 역사적 사건들로서도 나타난다. 정신은 스토아주의, 회의주의, 기독교 세계관 등의 철학적 입장으로서도 표현된다. 이들 예시는 의식과 대상, 자기와 또 다른 자기, 개체성과 이성, 신앙과 계몽 간의 투쟁 상황에 대한 철저한 보고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을 통해서 인간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점유하는지, 인간들이 사회를 어떻게 구성해 나가는지, 자유를 위해 어떻게 투쟁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성숙한 삶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세계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이성, 주체 및 자유의 개념을 통일시켜 세계와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체계로 구축하려는 기반이 정신현상학이다. 헤겔의 주장은 진리는 전체인데 우리의 삶 전체가 진리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이성은 존재이다’라는 어귀에 실로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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