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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Jul 22. 2021

통계로 물리를 설명하다

열과 통계

열에 의한 기체의 팽창이나 열이 동력으로 변환되는 과정 등 열과 관련된 현상은 직접 관찰을 통해 밝혀진 것들이다. 열 현상은 온도, 압력, 부피 등 물리량의 상호 관계로부터 상태가 규정된다. 예를 들어 주어진 온도에서 압력과 부피의 곱은 일정하다. 일반적으로 압력과 부피는 온도에 비례하여 온도가 올라가면 압력과 부피는 커진다. 이러한 상태방정식은 열에 의한 물질의 상태를 표현하기는 하나 상태의 근원적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므로 설명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상태방정식은 주어진 환경에서 압력과 부피 및 온도의 상호 관계를 얘기할 뿐이다. 그러므로 압력이나 부피 및 온도가 뉴턴역학의 물리량인 운동에너지, 힘과 같은 것으로 표현되어 열에 대한 방정식의 형태로 표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열이 칼로릭과 같은 원소가 아닌 것이 밝혀진 이후로 유체 내의 원자나 분자의 움직임에 의해 열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19세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추론은 원자론에 근거하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미세한 무엇인가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다. 원자는 견고하고 영원히 지속하는 성질을 가진 물질로서 정의되며 현존하는 사물의 모든 것이 원자로 구성되어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엄청난 수의 원자 전체가 운동과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이러한 고대의 원자론 사상은 16, 17세기에 기계론과 함께 등장하였으나 사변적인 것에 머물렀다. 18세기 들어서 기체의 압력을 설명하기 위하여 기체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최초의 분자 모형 Molecular Model이 베르누이 Bernoulli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베르누이 모형에서 압력은 분자들이 벽을 치는 힘으로 정의되었다. 19세기 초에 돌턴 Dalton은 물질의 구조 및 특성을 설명하고자 원자를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로서 정의하고 원소의 비율에 따라 물질의 성질, 질량 등이 서로 다르다고 했다. 그의 원자론은 원자에 대한 증거를 화학 실험에서 찾은 것으로 단순 사변적인 것에서 벗어난 사례였다. 돌턴의 원자는 열을 원자론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 힘을 실어주었다. 


19세기 중반에 클라우지우스 Clausius는 원자 또는 분자들의 운동으로 열을 설명하는 기체운동론 Kinetic theory of gas을 발전시켜 열이 기계적인 일이나 에너지와 관련된 것을 증명하였다. 기체 안의 원자들이 모두 같은 속력을 가진다는 이상적 가정에서 열과 일, 에너지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내었다. 일반적으로 원자들의 속력은 모두 다를 것이므로 맥스웰은 원자의 속력이 각각 다른 경우를 고려하여 실제 상황에 가깝도록 기체운동론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연이어 루드비히 볼츠만 Ludwig Boltzmann은 기체 내의 원자들이 시간에 따라 어떤 속력의 분포로 변화되는지를 예측하는 이동 방정식을 구축하였다. 방정식은 거시적으로 관찰되는 열 또는 전기의 전도나 점성 등 물질 내의 이동 현상 등을 분자 또는 원자의 움직임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H-정리는 기체 내의 원자들의 운동에 관한 고전적인 이론으로 원리적으로 뉴턴의 법칙을 따른다. 


기체분자운동론에 의해 온도와 압력을 원자나 분자들의 끊임없는 움직임의 상태로 나타낼 수가 있고 기체가 어떻게 팽창할 것인지의 예측도 가능하게 되었다. 압축된 기체가 피스톤을 밀어 수행하는 증기기관의 기계적 일도 기체의 구성물인 원자나 분자의 집합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이로써 통계와 확률론을 적용하여 집단 효과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여 확률을 이용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물리법칙이 구축되었다. 통계적으로 열역학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고 열역학 제2 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통계적인 설명이 오히려 이해가 쉬울 정도로 엔트로피의 성질을 잘 묘사한다. 


엔트로피는 분자 집합의 모든 가능한 상태 중에서 평형 상태가 발생할 확률이 가장 높도록 열적 평형 상태가 최대가 될 때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통계적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만나 그 중간의 상태가 되어 변하지 않는 평형 상태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때 최종의 평형 상태는 이 상태에 도달할 확률이 가장 높은 상태로서 그 과정 중에 엔트로피는 열적 평형 상태가 최대가 될 때까지 증가한다. 물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나 역으로 차가운 데서 뜨거운 곳으로 이동하는 법은 없다. 이를 엔트로피로 표현하면 증가만 하는 일방적 방향이 된다. 이 상태에서 원래의 상태로, 본래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막 섞인 상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이처럼 통계를 활용하여 온도, 압력 및 부피 등의 거시적 물리량의 표현이 모두 가능한 것은 입자가 모두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속도 분포함수로 표현되어 수학적으로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도가 낮을 때 대부분의 입자는 느리게 움직이고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는 극소수이다. 반대로 온도가 높을 때는 대부분의 입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소수가 느리게 움직이는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초기에는 온도가 같아 입자의 속도가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있다가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입자들이 주어진 온도에 따라 보편적인 속도로 분포하게 되는 평형 상태에 이른다. 물리적 계가 원자들의 충돌로 인하여 열적 비평형 상태에 있다가 궁극적으로 평형 상태에 이른다. 이때 열적 평형 상태에 이른 기체 원자들은 항상 어떤 특정의 분포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복잡한 원자들의 운동도 통계적으로 기술하여 규정적으로 방정식의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 


입자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방법이 개개의 입자 운동에 대한 뉴턴역학과 아울러 입자 집단의 행동을 설명하는 통계역학이 더해져 물리학이 자연 현상을 다루는 방법의 지평이 더욱더 넓어졌다. 오늘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핵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실험적 발견과 이론적 추론이 확립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원자 또는 원자 이하의 세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기체분자운동론이 구축되고 있던 19세기 당시에는 원자론을 신봉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 나누어져 있었다. 원자론에 회의적이었던 주된 이유는 뉴턴역학이 초기 조건으로 미래의 운동을 결정하므로 물리법칙이 확실성을 담보하기 때문이었다. 


뉴턴역학의 결정론은 물리학이 자연 현상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하여 주었기 때문에 열역학이나 광학 등의 물리 분야에서도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입자의 운동이 확실하게 예측되지 않고 오로지 확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통계를 물리적 계에 적용한다는 것에 대한 불신이 컸다. 그러므로 불신론자에게 원자들의 운동에 관한 물리적 상태를 확률로 나타내는 통계적 수학을 물리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다. 더구나 당시에 압력, 온도 및 부피 등 거시적 물리량으로 이루어진 법칙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굳이 믿기도 힘든 원자 모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론에 대한 불신 외에 원자나 분자는 실험을 통해 직접 관찰할 수도 없으므로 가상 입자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불신 또한 컸다. 이들 실증주의자는 과학 평가의 최종 기준으로 실험 및 관찰이 강조되어야 하고 확정성이 없는 통계적인 설명은 이론의 과도한 개입으로 여겼다. 한발 더 나아가 과학은 측정할 수 있는 것에만 한정해야 하고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것에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구축된 기체운동론이 설령 옳은 답을 제공하는 수학적 모형일지라도 원자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아니라고 주장하여 눈으로 볼 수 없는 원자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방하였다. 이러한 불신으로 인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볼츠만은 자살을 택했다. 역설적으로 볼츠만 통계는 현대물리학을 탄생시키게 된 단서를 제공하였다. 과격한 이율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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