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Feb 14. 2022

커피와 쟁이

커피의 색은 몇 가지일까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리해지는 시절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장인 정신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날로그 시절엔 당연하던 그런 노력이 요즘엔 더욱 절실해지고 때론 고집스러운 느림이 고맙게 여겨지곤 한다.


마침 장인의 정성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웃 작가님의 댓글이 달렸다. 웹드라마 ‘커피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생각이 난다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함께 커피 투어를 다닌 엄마가 추천해주신 드라마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커피 세계를 고수해 나가는 커피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그를 알아봐 주는 단골손님들의 일상이 현실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하다. 그리고 같은 길을 동행하려 하는 예쁜 제자와 서로를 아끼는 스승과 제자의 마음까지. 커피를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로   드라마라 보는 내내 몽글몽글한 기분이 든다.


그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나는 곳이 있었다. 세곡동에 위치한 ‘커피와 쟁이’라는 좀 촌스럽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이름의 카페다. 살짝 중심가에서 떨어져 위치한 세곡동의 상가 건물 2층. 커피 마시러 찾아오기는 좀 낭만도 분위기도 없지 않나 싶었다. (서대문에서 유명한 카페였는데 이전했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의 한 중간에 자리를 잡은 그곳은 생각보다 내부가 널찍하다. 핸드드립과 스페셜티 원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인데 입구부터 알 수 있었다. 이런저런 커피 관련 안내문과 벽면 가득 전시되어있는 소품들을 보니 커피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다룬다 싶어 설레었다.


이번에도 조금 이른 시간에 들린 탓인지 커피 쟁이인 주인장은 부재중이고 대신 그의 부인이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남편이 정말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데 자신이 내린 커피라도 마시겠냐고 물었다. 시간을 들여 찾아갔으니 그냥 돌아오고 싶진 않았다. 별 기대 없이 마신 그녀의 커피가 맛있어서 기대감이 커졌다. 커피맛이 괜찮냐는 물음에 맛있다고 답하자 남편이 내린 커피가 진짜라며 아쉬워한다. 그녀에게서 남편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달까. “우리 남편은 완전 커피밖에 몰라요.” 푸념인지 자랑인지 모를 그녀의 귀여운 멘트에 더욱 신뢰가 가서 이래저래 수다 타임이 시작되었다. 자신도 원래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남편의 커피 혹은 좋은 커피는 몇 잔을 마셔도 속이 쓰리거나 거북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이젠 하루에 열 잔도 마신다며 자신이 마시려고 내린 커피를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아마 다 마시고 가셔도 속이 괜찮을 테니 자신을 믿어보라고 한다. 그녀에게 설득이 된 건지, 아마도 정말 질이 좋아서겠지만, 연거푸 여러 잔을 마시고도 속이 쓰리거나 매스꺼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참 신기해!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른 오후의 텅 빈 ‘커피와 쟁이’에서 여자 셋이 커피와 수다쟁이의 시간을 보내며 커피쟁이를 기다렸다. 결국 그는 금방 돌아오지 않아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다. 다음번엔 조금 늦은 시간에 와보겠다며 다음 방문을 기약하려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건넨다. 오후 내내 입안에 커피의 잔향과 단맛이 돌아 여운이 오래 남을 거라 한다. 자신 있는 그 멘트를 믿어보기로 하며 카페를 떠났다. 아니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마신 물 한두 모금에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순간 혀끝에 팝콘을 먹은 듯 고소한 단내가 진동을 한다. 정말이었구나! 그때부터 괜찮은 커피를 만났다 싶으면 습관적으로 물을 마셔보곤 한다. 입안 가득 남아있는 커피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로운 커피 지식을 얻은 덕에 좀 더 섬세하게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어느 분야던 쟁이들의 말은 일단 믿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처음엔 그저 맛있는 커피가 좋아서, 더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카페 투어를 시작했다. 물론 다양한 카페의 인테리어며 새로운 원두 종류를 알아가는 쾌감도 있다. 하지만 방문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가 진정 즐기며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그건 사람이다. 수많은 카페와 그 수만큼 다양한 커피맛이 있듯이 가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커피 이야기와 새로운 세계가 있다. 어디서 마시나 늘 짙은 사약 같은 색의 커피지만 그 안엔 저마다 다른 커피내리는 이의 고유의 색이 존재한다. 어느 하나 같은 것 없이 알록달록하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궁금해 낯선 카페의 문을 가슴 두근거리며 두드리게 된다.


* 오랜만에 '커피와 쟁이'를 찾아보니 임시 휴업 중이라는 정보가 뜬다. 코로나 제발...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들은 오래도록 존재해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