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한 알 한 알에 충실해야 해
게으름이 의지를 앞설 때 보게 되는 다큐가 있어요. '스시 장인:지로의 꿈'은 75년 외길을 걸어온 스시 장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노장과 수제자인 아들은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날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정말 같은 날은 하루도 없겠지만, 큰 틀에서는 수십 년간 비슷한 일과가 반복되죠. 그로 인해 희생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고요. 사실 대부분은 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왜 지로는 일본 최고의 스시 장인이 되었을까요. 왜 그의 성은 유독 견고하고 높을까요. 뻔한 얘기지만 해보겠습니다.
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어요. '모래성 쌓기'. 살아온 발자취가 마치 해변가 이곳저곳에 쉴 새 없이 만들어 놓은 모래성 군집을 보고 있는 거 같아요.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는 만들었는데, 그 이상으론 쌓아지지가 않아 다시 옆에 새 구덩이를 팝니다. 그리곤 또 비슷한 크기의 모래성을 올리는 거예요. 간혹 가다 거센 파도가 모래사장 깊숙이 들이쳐 지나갑니다. 산발적으로 쌓여있던 나지막한 모래성들은 순식간에 온데간데 없더군요. 그럼 또다시 그 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모래를 쌓아 올리고... 계속된 반복이에요.
왜 멀쩡한 모래성 하나가 없는 걸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답은 쉽게 나왔어요. 그냥 열심히만 했던 거예요. 모래를 높이 쌓아 올릴 방법을 깊이 연구한 적이 없고, 견고하고 높은 성이 만들어질 때까지 인내하지 않았어요. 그냥 열심히 이리 파고 저리 파기만 했죠. 성공의 진리는 반복과 꾸준함이라고 하죠. 반복과 꾸준함 비슷한 건 해왔던 거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가 빠진 열심히를 위한 열심히만 행하는 반복엔 '발전'이라는 결과가 자리 잡을 틈이 없어요.
남이 해놓은 것을 보면 참 간단하고 쉬워 보일 때가 있어요. '저거 나도 하겠다', '나도 저런 생각은 했었지' 싶은 때가 있죠. 초반 성과를 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가능하고요. 그런데도 같은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그 과정이 어려워서겠죠. 반복적인 지로의 하루하루엔 어제와 같은 행위는 한 번도 없었을 거예요. 매일 더 나은 생선을 찾기 위해 시장을 헤매고, 초밥 쥐는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그렇게 제자리걸음을 걷는 날 없이, 더 나아지기 위한 반복을 수십 년간 지속했던 거죠. 그것도 아주 꼼꼼하고 세심하게요. 견고한 지로의 성은 그런 오랜 과정을 군말 없이 이어온 당연한 결과인 거죠. 아니 과정 자체가 이미 결과였어요. 그 정도의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이 되잖아요. '와. 난 저렇게까지는 못하겠다' 하면서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것은 시간뿐이라 하는데 자꾸 잊어먹고 삽니다. 넋 놓고 여러 개의 헐거운 모래성을 쌓는 동안, 누군가는 모래성조차도 시도해 보지 않았을 테고 또 누군가는 견고한 성을 만들어 놓았겠죠. 아무리 탐이 나도 다른 사람의 성 앞에 내 푯말을 꽂을 수는 없네요. 파도에도 견뎌낼 성 하나 만들려면 탄탄한 땅을 찾아 모래 한알 한 알 충실히 쌓아 올려 나갈 수밖에요. 결과는 모르죠. 하지만 파도만 보고 앉아있진 말아야겠어요. 주어진 시간이 얼만큼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끝이 있다는 건 확실하니까요. 당연한 것들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