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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환 Dec 02. 2020

영화 “꿈의 구장”과 아버지

상한 마음과 치유 이야기


  어떤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었던 상처를 떠올리게 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일전에 1989년도에 나왔던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이란 영화를 보면서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영화의 주인공인 레이 킨셀라(케빈 코스트너)는 그의 아버지와 깊은 갈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청년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고, 야구 선수가 되려고 했지만 결국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레이는 자신의 그런 아버지가 무능해 보였다. 레이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야구도 싫어했고, 아버지와 공 받기 놀이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는 17세에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갔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는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여 아내와 딸과 함께 옥수수 농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화해를 하지 못하고, 아내와 딸을 아버지에게 소개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는 옥수수 밭에서 일을 하다가 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는 “그것을 만들면, 그가 올 것이다”라는 소리였다. 그는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다가, 자신의 옥수수 밭을 야구장으로 만들면 그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누가 온단 말인가? 그는 알지 못했지만 아내를 설득하여 자신의 옥수수 밭의 한 부분을 갈아엎고 그곳에 야구장을 만들었다.



  야구장을 만들고 나서 그곳에서는 동화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죽었던 미국의 야구선수들이 레이가 만든 야구장에 와서 야구를 하는 것이었다. 레이는 그 야구장에서 야구를 하던 포수가 젊은 시절의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었다. 그 젊은 포수는 자기가 알고 있던 그런 무능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레이의 아버지는 야구 선수의 꿈을 품은 젊은이였다. 아버지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구 선수가 되지 못하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꿈을 잃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열정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젊은 시절의 아버지에게 다가가 자신의 아내를 소개하고, 딸을 소개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와 공 받기 하지 않으실래요?”. 그러자 아버지는 좋다고 말하고, 레이와 아버지는 서로 공을 주고받는다. 레이가 그동안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던 것은 한마디의 평범한 말이면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 저와 공 받기 하지 않으실래요?”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하고, 일 평생을 아버지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가 좋아하던 공 받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신의 마음의 상처도 치유를 받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의 아버지는 자녀들과 대화가 거의 없던 과묵하고 무서운 아버지였다. 우리 집은 자녀가 넷이었다. 1960년대에 다자녀들을 양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일하셨고, 그렇게 자녀를 양육하다 보니 요즘 이야기하는 좋은 아버지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즘의 좋은 아버지의 기준은 아버지가 시간을 내어 자녀들과 대화도 하고 놀아주는 아버지이지만, 당시의 좋은 아버지는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며, 학교에 보내어 주는 아버지였다.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며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하루 종일 일하셨고, 그래서 자녀들은 아버지와 대화할 시간도 놀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휴일에 어쩌다가 아버지와 놀 수 있는 날은 신나는 날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창경원을 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창경원은 동물원과 함께 놀이동산이 있었다. 그곳에 가서 동물들을 구경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던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날 비행기를 타고 비행기가 땅에 도착하기 직전에 느리게 돌고 있을 때 스릴을 느끼려고 먼저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가 아버지에게 크게 혼났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 아버지와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아버지와 어색한 대화를 시작했다. 평소에 아버지와는 일상적인 대화 외에는 대화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청년시절에 가졌던 생각이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오랜 시간을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젊은 나이였고, 그런 아버지가 자녀들을 낳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 힘들었던 인생을 사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던 것은 그 당시의 사회가 가부장적인 사회이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 한편에는 자녀들을 향해 고백하지 않은 깊은 사랑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꿈의 구장” 영화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이 공 던지기를 하며 상한 마음이 회복되는 장면은 내게 콧날 시큰한 감동을 주었다. 레이가 꿈도 없이 살아가던 아버지를 미워하고, 그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가 나중에 자신의 옥수수 밭에 만든 “꿈의 구장”에서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와 공 던지기를 하며 화해가 되었던 것처럼,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그 시간이 아버지와의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결혼을 하여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와 레슬링을 하고, 매일 밤마다 잠자기 전에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랑한다고 고백해주었다. 아마 내가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놀이와 아버지에게 듣지 못했던 사랑의 고백을 나의 아이에게는 경험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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