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동환 Dec 18. 2020

부부 가운데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을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을 미리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얼마 전에 아내와 함께 대화를 하다가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을까?”라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과거 3-40대에는 생각할 수 도 없었던 질문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을 보니 그만큼 우리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올해로 결혼을 한 지 33년이 되면서 결혼 생활을 뒤 돌아보며 수많은 기쁨과 고난의 시기를 넘어 오늘까지 함께 해온 아내를 바라볼 때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우리는 한날한시에 가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아내의 답을 막아서며 나는 “그건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아내는 나보다 두 살이 아래다. 만약 우리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난다면 그러면 아내가 큰 손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적어도 내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은 더 살아야 된다고 말했다. 아내나 나나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대부분의 신랑 신부는 결혼만 하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혼 생활은 기쁨과 분노가 동행하는 전쟁터이다. 신랑과 신부는 신혼의 삶 속에서 행복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각자가 살아왔던 문화와 습관으로 인해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도 결혼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이 결혼을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해서 부부는 서로 땅을 파며 개간을 해가는 농부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자녀를 낳고, 중년이 되고 그리고 노년이 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문화의 차이와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서 서로를 오해하고 살아갈 때도 많다.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 하는 생각으로 속상해할 때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는 처음부터 다른 존재이며, 서로가 마음은 있어도 서로에게 표현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덧 황혼이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한 배후에는 나만의 계산이 깔려있었다. 주변의 연세 드신 부부들을 보니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남은 경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남편이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로, 남편이 갖는 가족들 간의 관계의 어려움이다. 나는 아직 손자는 없지만 나와 자녀들과의 사이에서 아내는 오래전부터 중재자의 역할을 해왔다. 때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오해하는 자녀들에게 아내는 오해가 없도록 잘 설명해 주었다. 때로 화성에서 온 남자가 이야기하는 언어를 아이들이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때 아내는 이미 남편이 하는 화성어에 능통해 있기 때문에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잘 해석해서 설명해 주고 중재해 주는 것이다. 남편은 때로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전후 설명이 없이 무뚝뚝하게 이야기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럴 때 아내는 훌륭한 통역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째로, 남편은 나이가 들면 인기가 없지만, 대부분의 아내는 자녀들이나 손자들에게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딸이 아기를 낳아도 엄마를 부르지 아버지를 부르는 딸은 거의 없다. 아이들이 육아를 하면서 급한 일이 생길 때 제일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이 엄마다. 그래서 아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가가 높아지게 된다.


셋째로, 남편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가꾸는데 서툴기 때문이다. 대개 아내들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가 되어도 자신을 잘 가꾸고 아이들을 잘 돌보며 모든 것을 잘 이끌어간다. 그러나 남편들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것이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나, 옷을 입는 것부터 규모 있게 잘하지 못한다. 그제야 아! 내가 평소에 요리를 좀 배워둘걸,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일에 관심을 가질 걸, 옷을 입는 센스를 키울걸 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넷째로, 남편은 나이가 들면서 눈치가 없어진다. 요즘 말로 “낄낄 빠빠”에 약하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나이가 들면 쉽게 노하 기도 하고, 자존감이 약해져서 쉽게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는 나이가 들어도 주변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진다. 남편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주변의 사람들과 새로운 사귐을 갖는 것은 거의 쉽지 않다. 그래서 남편은 주변의 사람들과 어색한 관계를 유지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아내가 없는 삶이 상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같이 살아온 아내를 하루아침에 잃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비겁하게 들리지만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이기적인 계산을 몰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꿈의 구장”과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