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개괄한다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이다.
<논어>
사악함이란 무엇인가? 사악함은 자기 자신답지 못한 것이다.
왜 자기 자신답지 못하는가? 무지 때문이다. 당신은 무지하기 때문에 탐욕스러우며 분노하고 억지스러운 장단에 발 맞춘다.
무지를 어떻게 물리치는가? 당신은 태초에 께끗한 거울이었다. 세상 만사를 비춰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신의 머리에 도덕이 들어서고 규범이 들어서며 탐욕이 들어서고 걱정이 들어서더니 거울에 붙어 굳어 버렸다. 그대는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었으나. 어느새 무지해졌다.
당신이 어린이보다 사악하다. 원시인 보다 사악하다. 그러나 어린이는 자립하지 못한다. 원시인은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당신이 자립적인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악해져야 한다. 당신이 사악함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면 당신에게 새로운 선이 떠오를 수 있다.
당신은 어린아이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세상의 다양한 압박에도 당신의 자유가 흔들리지 않을만한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포용력이 없다면 당신은 다시 악의 유혹을 받는다. 어린 아이는 부모의 보호가 끝난 후엔 필연적으로 악의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악을 통해 결국 포용력이 길러지고 강인함이 길러지며 이후 당신은 다시 선함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당신의 탐욕과 불안은 돌아갈 때를 모른다. 그러니 당신은 깨어있어야 한다. 당신이 사악함을 버릴 수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어진 사람을 보면 똑같아지려고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반성한다.
<논어>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당신 자신을 반성하라. 당신은 왜 그 어질지 못한 이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가? 그가 당신을 대리 만족 시켜주기 때문이다. 당신과 그 사이에는 아무런 근본적인 차이도 없다. 당신이 그저 사회적 체면을 조금 더 신경 쓸 뿐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좀 더 겁이 많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는 당신의 파괴적 욕망을 당신을 대신해 살아주고 있다. 당신은 그의 희생에서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파괴는 아무 쓸모 없는 일이 될 뿐이다. 그는 당신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그에게서 배우라. 당신도 그와 똑같을 수 있음을 알고 당신 자신을 돌아보라.
중 이상의 사람에게는 높은 지식을 이야기해도 되지만 중 이하의 사람에게는 높은 지식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느니라.
<논어>
당신이 아는 배움은 고정된 것이다. 당신을 가르치는 선생은 당신이 배우든 다른 사람이 배우든 누가 배우든 같은 내용을 가르친다. 그것은 모두 중 이하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접하는 모든 배움은 중 이하의 지식이다. 누가 들어도 상관이 없으며 중 이상의 사람에게는 무가치한 지식이다.
중 이상의 지식이란 무엇인가?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만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다. 몇 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은하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당신은 분노할 것이다.
예수마저도 중 이하의 사람들에게 높은 지식을 이야기하다가 처형 당했다. 중 이상의 지식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깨달은 사람이거나 곧 처형될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둘 다 해당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은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수 있는 세상이다. 당신은 공자만큼 선별적으로 중 이하와 이상을 나누어 처신할 수 없다. 과거에는 실제 돌팔매질이 날아왔다면 지금은 악플이 날아온다. 또, 표현의 자유로 표현되는 평균적인 포용력은 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가르치셨으니, 학문과 덕행과 성실과 신의다.
재능이 있더라도 없는 자에게 묻고, 학식이 많으면서도 적은 이에게 물으며, 도를 지녔으면서 없는 듯이 하고, 가득 차 있으면서도 텅 빈 듯이 하며, 침해당해도 보복하지 않는다. 옛적 내 친구는 이런 일에 유의하고 힘썼다.
설사 주공만큼의 재능과 훌륭한 점을 지니고 있더라도 교만하고 또 인색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것은 모두 볼 것이 없느니라.
나는 덕 사랑하기를 미녀 사랑하듯 하는 사람을 아직 본 일이 없다.
<논어>
신의를 지키면 당당하지 못할 것이 없고 성실하면 불안해할 것이 없으며, 학문을 닦음으로서 무지를 줄이고 덕행을 행함으로서 운이 좋게 한다.
하나 밖에 모르는 사람이 교만하다. 하나를 성취하더라도 다른 성취 또한 아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다. 인색한 사람은 미래를 걱정하고 자기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다. 인색하지 않은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자기 자신과 세상을 하나로 본다.
덕 사랑하기를 미녀 사랑하듯 할 수는 없다. 미녀에 대한 사랑은 태초부터 넘쳐나는 것이고 덕에 대한 사랑은 점차 길러가는 것이다. 공자는 미녀보다 덕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위선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신의를 지키고 성실하며 학문을 닦고 덕행을 행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