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에 또 그 꿈을 꿨다.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온 후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이 꿈을 꾸게 된다. 처음에는 하이힐이 보인다. 분홍빛이 도는 검정색의 하이힐. 하이힐에서 시선이 위로 올라가면 하얗고 건강미 넘치는 매끈한 허벅지. 시선이 더 위로 올라가면 수염이 보인다. 수염? 나는 당황한다. 그리고 나타난 얼굴은 예수님의 얼굴이다. 예수님이 중세 유럽 벽화에 나올법한 흰색 토가를 입고 아래에는 하이힐은 신은 채로 요염한 다리를 뽐내고 있는 것을 나는 바라본다. 예수님이 입을 옴짝달싹 움직여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이 기억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룸메이트는 나처럼 말이 없다. 우리가 하루종일 같이 기숙사 방 안에 붙어 있어도 하는 말은 오후 11시쯤에 "불 끌게." 한 마디 뿐인 날도 비일비재하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가끔 둘이 치킨을 시켜서 맥주를 마시는 일도 있다. 그럴 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나도 어디가서 분위기를 띄우는 타입은 아니지만 룸메이트는 나보다 더 심하다. 그러다보니 굳이 같이 치킨을 먹자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중이다.
한 번은 내가 연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반응이 영 마뜩찮았다. 마치 내가 중범죄를 고백하고 있기라도 한 것 마냥 경멸하는 눈빛을 띄고 나를 보는 것이었다.
"너는 연애해?"
내가 물었다.
"아니."
"왜?"
"그냥."
"그냥이 어딨어. 취향이 여자쪽이 아니야?"
나는 나름대로 농담을 던진 것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여전히 마뜩찮았다.
"그냥. 종교적인 이유 비슷한 거야."
"연애 금지하는 종교가 어딨어. 섹스는 몰라도, 연애는 다 하잖아."
"그니까 종교 때문은 아니고, 그 비슷한 거라고."
"그냥 못하는 거 아니고?"
정확히 대답을 안하고 마치 내가 이해하지 못할거라는 듯이 말을 빙빙 돌리는 게 짜증이 나서 비꼬듯이 말했다.
"성적 만족은 사탕 같은 거야. 섹스는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게 아니라, 할만큼 하면 이제 무감각해지는거라고. 지금 즐길 거 다 즐기면,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
나는 전혀 납득되지 않았다. 그럼 죽을 때까지 아꼈다가 사탕을 들고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먹으라고 있는 것이 사탕인데 말이다. 아니면 20대에 아껴놓았다가 70살에 무뎌진 감각에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을 이끌고 힘겹게 먹는 게 더 낫다는 건가?
"그럼 평생 그렇게 살 거라고?"
"그럴 수 있으면."
내가 보기엔, 룸메이트는 아무리 봐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우울증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절제도 좋고 신념도 좋지만 자기 정서가 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은 모르고 그럴듯한 명분을 가져다가 계속 욕망을 억누르기만 하는게 맞을까? 젊음의 에너지는 무섭다. 자기 자신의 욕망이 말라 죽어버릴만큼 억누를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것이 젊음이다. 룸메이트는 사탕을 아껴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는 룸메이트는 사탕을 잡으려는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것이 10년 전이다. 이후 룸메이트와는 군대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고, 어젯밤 동기들이 오랜만에 동기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룸메이트의 부고 소식을 알게 됐다. 사인은 심근경색. 이제 막 30이 된 나이다. 주변에서는 식습관이나 좌식 생활 같은 이야기로 죽음을 정의하면서 죽음에 담긴 심연을 덮어두려 하고 있지만 내가 지켜본 룸메이트를 떠올려 보면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룸메이트는 자기 자신을 죽이는데 성공한 것일 뿐이다. 절대로 사탕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날 밤 꿈에는 10년 만에 하이힐을 신은 예수가 나왔다. 비록 몰골은 수상쩍지만, 그 예수 덕분에 나는 룸메이트의 죽음이 어느새 내 마음 속에 올려 놓은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예수가 말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건,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천국에 간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