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몇번이고 읽었던 책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데미안”이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다.
데미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에 알아차리긴 힘들지만 반복해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어렴풋이 헤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선과 악은 모두 내 안에 있으며, 내 마음속에 귀를 기울이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선이라고 생각한 것이 진짜 선인지, 악이라고 생각한 것이 진짜 악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경우엔 선이라고 생각한 것이 악일 수도 있고, 악이라고 생각한 것이 선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싱클레어와 데미안,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이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싱클레어가 방황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좌절할때 또 다른 자아인 데미안은 결국 그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준다. 아주 단순하고 쉽게. 그리고 에바부인이라는 또 다른 자아는 싱클레어의 여성적인 부분을 나타내는 듯하다. 남성 안의 여성적인 부분을.
프란츠 크로머에 의해 괴롭힘 당하고 선과 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즉 성숙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라서 애를 먹었다. 하지만 네 번 정도 반복해서 책을 읽은 후, 이처럼 잘 쓰여진 성장소설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내 청소년기가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나도 싱클레어처럼 방황이란 걸 한 것 같다. 인생은 고뇌와 고통으로 차있다고 생각했고, 행복이란 어디있으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끝없는 고민을 했다. 사실 그 대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 않았음에도 청소년기에 자아를 곧게 세우고 나 자신에 대해 깊이 탐구했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여전히 어리고, 선택의 순간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기회를 놓치기도 하는 나지만, 나는 그 자체로서 나다. 날개가 부러져서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새라도 걸어서라도, 기어서라도 살아간다면 그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는 것. 가끔은 프란츠 크로머가 찾아와 날 괴롭힐 수도 있고, 데미안이 찾아와 괴로운 상황을 쉽게 해결해 줄 수도 있고, 에바부인이 찾아와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싱클레어에게서 내 모습이 보여서일지도 모른다.
중학생과 대학교 3학년 시절, 내 인생에도 이유모를 암흑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싱클레어가 술만 먹으러 다니고 인생의 목표 없이 살던 그런 시절처럼. 나는 그 암흑 속에서 무기력해졌고, 잠만 잤으며, 식이장애를 앓았다. 그 시간동안 매일매일 고뇌 속에서 살고, 그 고통을 끝내기 위해 발버둥쳤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어느 날, 정말 갑자기 어느 하루, 말끔하게 나는 괜찮아졌다. 그 때 난 나에게 뭐라고 했던가. 나는 나에게 “괜찮다. 나는 나라서 괜찮다.” 라고 무의식적으로 말했던 것 같다. 난 그 당시 내가 싫으면서도 날 사랑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아마 갑자기 괜찮아졌던 그 날 나에게도 내 마음속의 데미안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여러 상황에 처하고 힘든 일을 겪었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잘 이겨내고 있었다. 지금도 정말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상황상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내 인생 통틀어 봤을 때 가장 마음이 불안정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시기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고, 전날 울고서도 다음날 웃으며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나도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누군가를 내 마음속에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키스하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처럼.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나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나의 자아는 무엇보다 강하다. 스스로를 일어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어쩌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소설 데미안은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분명 이 세상 모두의 마음 속 한 구석엔 데미안이 살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아무때나 나타나진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는 우리에게 윙크를 하고 있을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는 새다. 그런 잠재력을 가졌기에 누구나 진정한 자신에게 이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