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뚜렷한 사람은, 섹시하다
누가 저한테 "뭘 좋아해?", "이거 어때?", "네가 골라봐!"라고 말하면
내 대답의 거의 95%는
아무거나 다 괜찮아. 다 좋아.
난 딱히 취향이랄 게 없는 사람이야.
여태까지는 남들이 하자는 대로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해왔던 것 같아.
그러다 작년 말에 퇴사를 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갑자기 생겨버렸지.
되게 좋은 찬스라고 생각했어.
이참에 여태까지 내가 걸어온 길들을 되돌아봤거든?
'이게 뭔가..' 싶더라. 뭔가 되게 중구난방이랄까.
연결고리가 별로 없어 보이더라고.
고민할 거리나 기회가 눈앞에 있을 때
내 취향이 없으니 판단 기준도 명확하지 않더라고.
그렇게 흘러온 시간들이 쌓아준 공든 탑이 남들보다 낮은 느낌이었어.
지난 라이팅룸 팝업스토어에 갔다가
어떤 분이 써둔 글귀가 내 뒷통수를 빡 치더라고.
뚜렷하고 확고한 취향이 있다는 것은 나만의 판단 기준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곧 판단 기준이 나를 보호해주기도 하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는 지침이 되기도 하더라.
그래서 최근엔
이것도 좋아요. 저것도 좋아요. 전 아무거나
라는 대답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것 대신에
전 옛날 홍콩 분위기와 왕가위 감독을 좋아해서
제 인생영화는 중경삼림이예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영화의 후반부를 좋아하는데,
전 금성무가 잘생겨서 전반부가 좋더라고요
라고 말하려고 노력해.
이러면 듣는 사람들도 내 이야기에 더 흥미를 가지고 더 잘 들어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ㅎㅎ
퇴사한 김에 갭이어를 보내는 동안 제1의 목표를 삼은 것은 바로
나를 보호하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 판단 기준을 세우는 것
그래서 지금 나는 이제야 취향을 찾는 중이야.
나.. 섹시해질 수 있겠지...?
p.s.
네 취향은 뭐야?
취향이 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해?
취향에 대해 고민해본 것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