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시와 건축은 유럽과 왜 다른가?
독일의 공교육과 시민교육을 통하여 한국의 도시와 건축을 들여다 보다
프롤로그
한국의 도시와 건축은 유럽과 왜 다른가?
건축과 도시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무슨 건축학이나 도시설계 전공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건축이나 도시 관련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읽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읽었는데 자꾸 읽다 보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설계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건축은 사람을 배려해야 하고 그런 공간들이 모여서 도시가 이루어진다는 내용이 꼭 들어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할까? 우리의 도시는 건축과 사람이 따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졌다.
건축은 가장 실용적인 종합 예술이다. 같은 자재를 사용해도 건축가에 의해 다른 결과물이 나오며, 그곳에 머무는 사람에 따라 완연히 다른 공간이 된다. 플레이팅이 멋져도 맛이 없으면 요리로 인정받기 어렵듯 아무리 멋진 건축이라도 사람이 불편하거나 안전하지 않으면 건축 본연의 모습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도심 한 가운데 고층 건물이 하늘을 가리는 것이 불편하다. 상업지구도 아닌 주거 공간에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는 것이 이상했다. 특히나 강변을 따라 세워진 아파트는 더욱 그러했다. 어쩌다 외국에 나가보면 강가에 고층 건물이 지어진 것을 본 적이 없다. 도심에 있는 건물도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고층, 나머지 한쪽은 저층으로 만들어 바람 길을 만들어둔 모습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도시는 혁신도시든 신도시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짓기만 한다. 하늘도 공공재인데 누구의 허락을 받고 일방적으로 짓는 것일까? 이에 대해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이상했다. 물론 건물에 하늘이 가려진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고 높은 펜트하우스에 살아서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 판단 기준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아프게 하는 일은 공공질서에 반하는 일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당연히 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법과 규범, 도덕에 대해 배운 덕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공공이익에 위반하여 나쁜 일을 저지르면 법에 의해 처벌을 하고, 법에 의한 해결이 안 되는 경우 부당함을 호소하거나 시위를 하는 등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사회를 조금씩이나마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킨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공간’의 불합리에 대해서는 그런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연대하는 규모도 힘도 작다.
1961년에 출간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제인 제이콥스가 1950년대에 자본주의가 팽배하다는 미국에서 도시재생을 비판한 책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50년이나 지난 2010년이다. 왜 한국어판은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출간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도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가 바로 2010년 즈음이기 때문이다. 도시가 아프다는 것을 그제야 느끼고 그때부터 도시와 건축, 도시설계에 관한 책들이 하나둘 소개되기 시작했다. 도시재생 사업도 그 즈음부터 붐이었다.
부동산을 사고파는 갭 투자로 돈을 버는 ‘부동산 신화’가 철옹성처럼 굳건해서일까? 우리는 부동산 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반면 도시의 분위기, 아파트의 부실 공사, 층간 소음, 동간 거리, 일조권 등등 거주공간으로서의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이뿐인가. 옛 것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또 새로운 것이 들어오고, 또 부수고 새로 짓는 그 과정에서 공공성이 침해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쫓겨나더라도 우리는 침묵한다. 건설사가 모든 아파트의 내부 구조를 똑같이 지어도, 짓지도 않은 아파트에 계약금과 중도금이란 명목으로 큰돈을 요구해도 이것이 과연 합리적인 일인지 의심조차하지 않는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동산에 관한 한, 우리는 ‘사유 재산’ 이외의 다른 가치를 생각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부동산을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는 이러한 인식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근원을 찾기 위한 여정의 출발점을 교육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법과 도덕을 배우고 익혀왔는데, 왜 부동산에서만큼은 개인의 경제적 이익이 공공성보다 언제나 우선시되는지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규범에서 기본적 방향이 달라진 것은 언제부터인지, 삶의 목표를 방향보다는 속도로 재단하게 된 건 교육의 문제는 아니었는지, 이제껏 배우고 익힌 것들이 정말 삶의 좌표를 주기는 했는지를 알면 지금의 도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우리와 다른 도시 문화를 가진 유럽의 교육을 들여다보면 향후 우리의 도시와 건축이 보다 건강하게 건설되는 데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유럽, 그중에서 독일 교육의 공교육과 시민교육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교육 가치와 방향성을 살펴볼 것이다. 우선 한국과 독일의 도시와 건축을 서로 비교해보는 것을 시작으로 ‘개발’에 대해 두 나라의 시민들은 어떤 인식을 갖고 있고 공동체를 이루어왔는지 살펴보고, 서로 다른 공동체의 가치를 형성함에 있어 교육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연대하여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볼 것이다.
1945년,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여 패전국이 되었고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 1945년을 기점으로 폐허였던 두 나라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만 했다. 비록 지금의 독일은 통일이 되었지만 분단국이었다는 상황도 비슷하다. 그러나 75년이 흐른 오늘날, 두 나라 도시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이런 의미들이 각 개인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사례를 통하여 들여다보는 것 또한 가치가 있겠다.
자료 챙기고 글 쓴다고 오만 까칠함을 다 받아준 지인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한다. 느닷없는 인터뷰에 기꺼이 참여해준 인터뷰이들도 정말 감사하다.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도시와 건축에 시민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자료를 찾았고 글을 썼다. 자료를 찾아 읽을수록 한계를 느꼈다. 그럴수록 더 많이 찾아 읽으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부족함은 오롯이 글을 쓰고 연구한 나의 몫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사)한국도서관협회, 초록비공방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2020. 12. 늦은 가을
오늘도 어느 도시에서 숨 쉬고 있는, 김향숙 쓰다
----2020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길위의 인문학 인문교육콘텐츠 개발지원> 연구과제 프롤로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