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하루하루가 묶여 예술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학교 때 왜 미술을 제대로 못 배웠을까요, 왜 미술이라면 그림을 보고 작가 맞추기나, 그는 어느 시대에 태어나서 어떤 사상으로 그림을 그렸는지에만 집중하는 미술 수업을 해 왔을까요? 어른되어 보니 음미대 간 친구들, 문화 예술을 잘 즐기는 친구들이 참 부럽더군요. 우리는 왜 문화를, 미술을, 음악을, 일상에서 못 즐겼을까요? 미술관을 가 보려고 해도 뭔가 공부를 하고 가야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먼 나라, 이웃 나라의 낯섦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까요?
저는 미술도, 음악도, 학교 때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니 정말 귀찮았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시험 보는 그 행위 안에서 참으로 귀찮은 과목이 음악, 미술이었습니다. 왜 맨날 그림 보여주면서 그것도 시험지에는 흑백으로 인쇄된 그림을 보면서 작가가 누구냐, 이 사람은 언제 태어났냐고 그렇게 물어보던지요. 사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예술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요즘 더 많이 합니다. 소위 문화자본의 힘을 내가 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일상에서, 가볍게 예술을 즐기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제가 문화자본의 힘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나 봅니다.
어른 되어서 미술관을 가끔 가 보면 그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미술관을 성큼성큼 못 갔어요. 도대체 내가 이 그림을 보면서 무슨 의미를 가져야 할까. 단지 내가 편안하기만 하다고 그냥 우두커니 보고만 오면 되는 것일까. 그러다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게 된 강원도 양구 박수근 미술관을 가 보고 뭔가 다른 위안을 받았어요. 아니 박수근 작가는 그 삶의 발자취들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었구나. 어쩌면 이것이 예술의 경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럼에도 미술관을 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기도 했었어요. 나는 왜 미술관에 못 갈까요? 나는 왜 미술관에 못 갈까요.
몇 년 전에 도시재생의 한 축을 보기 위한 연수를 갔었지요. 일본의 나오시마로. 거기에서 지추미술관과 이우환미술관을 가 보게 되었는데 이우환 작가의 그림이 안도 타다오의 건축 설계로 더 돋보이는 것인가 싶은 게, 아련한 그 무엇이 있었지요. 그즈음에 이우환 작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삶은 예술로 빛난다> 책에서 조원제 작가는 이우환 작가의 그림은 산책길에서 만들어진 영감이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들이 너무 좋았어요, 일상에서 우연히 만나는 한 모퉁이에서, 꾹꾹 눌러진 듯한 예술의 영감. 그게 참 편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책을 한다. 멈춰 있던 혈액이 온몸을 순환하며 잠들어 있던 육체와 정신을 말끔히 깨운다. 세상을 새롭게 보고, 듣고, 맡고, 맛보며 새로운 생각과 느낌의 물꼬를 터나간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 p128 중에서
전작 <방구석 미술관> 2권이 국내와 국외의 유명한 화가들에 대한 학습적 내용을 담았다면 이번 <삶은 예술로 빛난다>는 조원제 작가의 인문학 사유가 많이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나는 삶의 한 부분에 대한 자기 성찰이 꾹꾹 눌러져 있어서 읽기 편한 책이었습니다.
사실 이게 출판사의 색깔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출판 기획자의 방향성에 따라서 작가의 내면 이야기도 색깔이 달라지듯이 미술책이기는 하나, 인문학 교양을 담은 자기 계발서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그런 자기 계발서 말고, 자신에게 조용히 어떻게 살 것인지, 한 번은 물어보는 것 어떠세요, 하는 그런 속삭임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게 참 담백해서 작은 설렘이 책 곳곳에 묻어 있어요. 미술을 이야기하되 독자의 삶 한 부분을 툭툭 물어보는 그런 책, 딱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책 받자마자 한 자리에서 절반을 읽었고,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다 읽었지요. 읽으면서 이 책은 서평 하나를 좀 찐하게 쓰자, 하는 다짐도 했었고요.
책 2장의 마르셜 뒤상의 나태함에 대한 글도 정말 좋았어요. 우리들 일상에서 툭툭 나오는 그 나태함이 어쩌면 내 삶의 한 부분으로 그조차도 잘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 책은 장르를 넘나드는 경계선에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는 나태할 때 비로소 예술적으로 살 수 있다. 삶에서 '아무 할 일이 없는' 시간의 공터를 스스로 허락하고 만들어야 비로소 내가 숨 쉬고 살아있음을 체감할 수 있고,
<삶은 예술로 빛난다> p110-111 중에서
나태함을 저는 일상에서 쉬어가기, 쉼표 하나 찍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방탄소년단들이 매년 데뷔한 날을 즈음하여 그들만의 페스타를 하는데요, 통상 속의 이야기를 나누는 방탄회식 버전으로 많이 해요. 2022년 방탄소년단의 페스타를 잊을 수가 없어요. 사실 완전체로 했던 마지막 페스타였어요. 2022년 작년, 데뷔 9년 차였지요. 물리적으로 군대 갈 멤버들도 있으니 이제는 각자 음악을 담을 수 있는 솔로곡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는데, 그중에서 리더인 알엠 김남준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우리는 특히 음악으로 자신의 색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음악에 담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사람인데요, 그런 의미를 꾹꾹 담으려면 우리는 각자 조금씩 쉬어야 해요. 쉼 없이 성적을 바라보고 일을 미친 듯이 하면 우리는 이 일을 오래 할 수가 없어요. 정말 방탄소년단을 오래 하고 싶어서, 각자의 색깔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고 싶어요."
이런 말을 하면서 김남준은 눈물을 쏟았어요. 그렇지요. 우리는 쉬어야, 뇌세포도 쉬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고, 에너지도 충전이 되는데 우리는 그 쉼을 너무 못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잠시 쉬어가는 것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다음 날 "방탄소년단 해체"라는 기사가 뜨고, 하이브 주가는 떨어졌어요. 사람들은 쉬어야 제대로 된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이지요.
<삶은 예술로 빛난다>는 책에서 이 쉼표를 '나태함'으로 표현해 두었어요. 내 인생에서의 나태함이 나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여러분 인생에는 어떤 나태함이 있었을까요?
우리 내면에는 근면 성실하려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나태해지고 싶은 마음 역시 있다. 이 둘은 일상에서 항상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 p115 중에서
우리들 일상에서 예술은 뭘까요? 거창한 예술 지식이 있어야만이 예술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예술이라는 것이 사실은 내 삶에 대한 물음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아이 어릴 때 주변에 선배들이 미술관을 자주 가라, 는 말을 참 많이 했는데요, 그때는 무서웠어요. 미술에 대한 지푸라기 같은 앎도 없는데 무슨 미술관을 가느냐,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지요. 지금 돌아다보니 용기가 없었구나, 싶어서 서글퍼집니다. 거창한 예술의 감동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보면 되는 것, 그냥 거기에 가만히 서 있어 보는 것도 사실 내 문화생활의 한 부분일 텐데 말이지요.
자기 삶에서 조금은 다른 흐름의 자기 계발서, 혹은 자기 치유책이 필요한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요. 아니 무슨 미술 인문서가 자기 계발서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자기 계발서가 별거인가요,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물음표, 느낌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자기 계발서 이겠지요. 저는 대하소설 <토지>가 한동안 아주 나를 잘 버티게 하는 자기 계발서였어요.
일상에서 나를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책 한 권 추천하면서 글을 마무리해요.
#내돈내산책 #조원제 #삶은 예술로 흐른다
#옥에 티_화가에 대한 설명이 짧게라도 있으면 이해도가 더 빨랐을 텐데, 하는 개인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도 전작 <방구석미술관>과 출판사가 달라서 더 설명을 못 했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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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스24에 조금 짧은 글로 올려두었는데, 9월29일에 리뷰 주간우수작으로 뽑혔네요. 세상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