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메달 Jan 07. 2018

물음표의 관계학

내공의 김.경.우. 이게 이름이 아니지.

관계,


울 아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정치적 관점만 진보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수이다, 라고.


맞는 것 같다. 일단 내 안에서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싫고, 실행도 싫다. 그로 인해서 나한테 불이익이 온다해도 그냥 그거 내가 책임지고 안 하고 싶다.


누군가 내 관계안에 사이 시옷이 들어온다 싶으면 좀 불편해진다. 불편하면 뭔가 선택해야지 하는 판단은 유보된 채 그냥 다 버려버리고 싶어진다. 이도저도 아니게 그냥 다 놓아버리는 것, 그게 늘 내 방식이었다.


누군가와 친한 관계에서 누군가 소개 받거나 알게 된 경우, 나는 되도록이면 직접적 관계를 안 한다. 직접적 관계를 해야 되는 상황이고, 하게 되었다면 나는 시시콜콜 그 관계의 확장을  내 원래 지인에게 설명하는 편이다. 그게 내 방법의 관계론이기도 하다만 딱 맞다, 라고 단언하지 않겠다. 다 케이바케(case-by-case)니까. 적어도 너 빼고 다른 관계 만들어서 우리들끼리 쿵작쿵작 하지 않았다는 암묵적 신뢰의 한 표현이기도 했다. 그 괜히 별거 아니지만 상대적 소외감 느끼는 짜증나는 일이 쓱 생길 수 있으니. 그게 감정적 소모감이 무릇 그런 작은 것에서 오니까. 정말 큰 비즈니스 관계면 속상함도 사실 없다. 원래 작은, 사소한 것에서 엇박자가 나는 것이니.


관계가 심플해야 오래간다. 뭐든 그 안에서 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궁금증이 생기면 그게 실상 별거 아닌데도 간혹 이상한 오해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그게 그 이상한 쾌쾌한 궁등내(경상도 사투리, 덜 숙성한 된장의 야릇한 냄새 따위들)를 풍기면서 아프고 지리한 상상의 날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험은 초등 때 친구들끼리 편가르면서 너 쟤랑 이야기 하지마, 뭐 이런 따위의 힘겨루기와 유사하다 싶다.


정치만 진보이고, 나머지 모든 일상적 생각은 보수라는 아들의 말이 수긍이 가는 요즘이다. 내가 그랬다. 관계적 보수는 이래저래 마당발처럼 썰레발 떨지 않는다는 무언의 다짐이다. 관계는 예외없이 원초적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거 무시하고 이래저래 촉수 넓히면 일단 나는 별로이다. 그러면 그 관계에 대한 물음표를 하게 된다. 물음표가 깊어지면 나는 애정의 깊이가 얕아지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이런 내 관계학이 맞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그리 생겨먹었는데 어쩌겠는가. 생긴대로 사는 수 밖에.


그럼에도 이 관계학을 비켜간 내 안의 사례도 있었다. 언제나 변수는 있기 마련이니. 그러나 그 변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에는 여전히 가끔은 물음표하여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풀어가는 관계나 풀어내는 그 많은 경우의 수에, '한 경.우 하는 김 경.우' 로 살아가는 내공이 내 안에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사는 거 역시 여전히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 리더십이 없는 상사의 공통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